[수도권]“영어 가르치며 모국의 情에 푹 빠졌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 서울 마포구 ‘해외입양인 어린이 영어교실’ 인기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마포 꿈나무 영어교실 송년회가 열렸다. 토머스 데니스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해외입양인 강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마포 꿈나무 영어교실 송년회가 열렸다. 토머스 데니스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해외입양인 강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I learned a lot from you, and now I have a confident to speak with foreigners(선생님께 많은 걸 배웠고, 이제는 외국인과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창천초등학교 4학년 김은주 양(10)이 영어로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한 탓인지 평소보다 음성이 떨렸다. 지켜보던 토머스 데니스 씨(35)도 손을 움켜쥐었다. 편지를 다 읽은 김 양이 주머니에서 양말을 꺼냈다. 김 양은 데니스 씨 앞으로 가 “It's for you(선물이에요)”라고 말했다. 비록 문법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데니스 씨는 “잘했다”고 칭찬하며 김 양을 꼭 안았다.

○ 모국사랑 쑥쑥, 영어실력 쑥쑥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루즈 키친’ 레스토랑. 해외 입양인 강사 8명과 마포구 대흥동 시나무지역아동센터 학생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포 꿈나무 영어교실 수업을 주관하는 마포구와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가 송년회를 마련해 학생과 강사들을 초청했던 것.

마포 꿈나무 영어교실은 올해 7월부터 마포구와 홀트아동복지회가 협약을 맺고 해외입양인들을 강사로 초청해 진행했다. 마포구는 4950만 원의 예산을 들여 강사료와 홈스테이 숙식비를 지원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입국을 희망하는 해외입양인들을 소개했다. 관내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 등 23곳 716명의 학생이 데니스 씨를 비롯한 해외입양인 11명으로부터 영어 수업을 받았다.

어색한 한국말과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수업시간마다 그랬던 것처럼 즐거운 대화가 오고갔다. 선물을 주고받고, 다과를 즐기며 함께한 시간들을 돌이켰다. 짧은 시간에 쌓은 정이 컸는지 손을 맞잡고 아쉬움을 달래는 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데니스 씨의 한국 이름은 박종근. 그는 부산에서 1974년 9월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박 씨는 부산시청과 소화보육원을 거쳐 1978년 홀트아동복지회로 옮겨졌다. 1978년 11월 미국으로 입양된 그는 지금 어엿한 회계사다. 8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다 “모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며 올해 9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모국에서 처음 보낸 3개월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놨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을 위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느꼈다. 한국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당분간 한국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는 “부모님을 찾는다면 좋겠지만 꼭 그런 이유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영어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에 대해 더 많이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어린이집, 해외입양인 모두 ‘윈윈’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높은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은 학부모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의 반응도 좋다. 과외를 시키거나 원어민 강사를 고용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 마포구는 강의에 참가한 해외입양인들에게 명예구민증도 수여하고,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쌓아가고 있다.

국내 적응을 쉽게 할 수 있고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입양인들의 참가도 늘고 있다. 11명 중 2명이 강의를 끝내고 귀국했지만 노르웨이 미국 등지에 사는 6명이 또 입국을 준비하고 있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모국 생활을 희망하는 해외입양인들을 적극 지원하고, 이 같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영어교실 운영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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