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부른 ‘1만원짜리 관광’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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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식품 구매 일정 맞추려
급커브 구간으로 코스 바꿔

사상자 31명을 낸 경북 경주시 관광버스 추락 참사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싸구려 관광’ 탓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싸구려 관광은 건강보조식품 회사나 대형음식점 등이 1만∼2만 원짜리 저가 관광상품을 미끼로 노인들이 건강보조식품과 특산물 등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

16일 참변을 당한 경주시 황성동 유림마을 주민들은 당초 울산의 한 음식점 주선으로 1인당 2만2000원씩 내고 울산으로 ‘온천 및 음식 관광’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고 3일 전인 13일 대구지역 관광회사로부터 ‘1인당 1만 원씩 내면 온천에 오리고기를 대접하겠다’는 제안에 따라 코스를 바꿨다. 이들은 울산 언양에서 온천을 한 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귀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관광회사가 ‘귀가하는 길에 경북 영천시에 있는 건강보조식품 매장을 들르자’고 제의하자 노인들은 값싼 관광을 시켜준 데 대한 고마움 때문에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울산에서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 대신 영천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건강보조식품 매장에 들른 뒤 급경사와 급커브 구간인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 도로를 지나다 사고로 이어졌다. 유림마을 주민들은 “차라리 2만2000원짜리 관광을 했으면 위험 구간을 통과하지 않아 화를 면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아예 무료관광으로 노인들을 유혹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 김포시 양촌면에 사는 최모 씨(73)는 최근 모 관광회사 주선으로 이웃 주민 30여 명과 함께 충남 홍성면 광천을 ‘당일치기 여행코스’로 다녀왔다. 여행경비 무료에 점심까지 공짜로 제공해줬다. 이어 안내자가 소개한 상점에 들른 주민들은 오징어젓, 꼴뚜기젓, 새우젓 등 수산물을 4만∼5만 원어치씩 구입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남모 이장(76)은 “계절에 맞춰 온천지나 해안가에 무료 관광을 시켜준다는 여행사 관계자가 거의 매일 찾아오고 있다”며 “하지만 여행 중간에 1, 2시간은 꼭 어떤 사무실에 노인들을 앉혀놓고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결국 ‘공짜 관광’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경주=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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