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에서는 양복과 돈봉투가 등장하는 드라마 장면 같은 검증 절차가 진행됐다. 이날 공판의 쟁점은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베트남 국회의장 초청 만찬장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2만 달러가 든 봉투를 건넸는지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홍승면)는 이미 7월에 법정에서 박 전 회장이 자신의 양복 윗옷 안주머니에 있던 돈봉투를 꺼내 박 의원의 양복 안주머니에 자연스레 집어넣는 장면을 직접 시연했다.
검찰은 이미 벌금 700만 원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4일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후변론 때 박 의원의 변호인이 제출한 사진 한 장이 재판부에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만찬 당시 상황을 담은 이 사진에는 박 전 회장의 양복 윗옷 왼쪽 윗부분에 비스듬히 구김이 가 있어서 안주머니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반면 검찰이 제출한 다른 여러 장의 사진에서는 양복 윗부분에 직사각형 형태의 뭔가가 담긴 듯 옅은 굴곡과 선이 드러나 있었다.
재판부는 결국 당시 상황을 다시 재연하기로 하고 이날 추가 증거 조사를 했다. 법정에는 사진 속 박 전 회장이 입었던 양복 윗옷과 넥타이, 행사장 의자 등이 구비됐다. 박 전 회장이 당시보다 몸무게가 7kg이 늘어난 탓에 당시와 비슷한 체구의 ‘대역’까지 동원됐다. 당시 사진을 찍었던 태광실업 직원도 출석했다.
재판부는 우선 돈봉투와 양복의 크기, 구김이 간 굴곡의 크기 등을 세밀하게 측정했다. 사진 속에 비친 물체가 돈봉투인지 추정하기 위해 비율을 적용해 사진과 실제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이날 주요 검증 대상은 박 전 회장이 한 참석자와 악수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재판장은 대역들을 법정에 세워놓고 사진 속 장면처럼 재연시킨 뒤 사진을 찍었다. 곧바로 이 사진을 사건 당시 사진과 즉석에서 비교해봤다.
검찰 측은 “당시 사진과 법정 재연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고, 박 의원 측은 “맞춤 양복의 특성상 대역을 썼을 때 실제 상황과 똑같이 재연될 수 없다”며 맞섰다. 재판부는 “양복 안주머니 하단 끝선에 나타난 굴곡이 실제 돈봉투 때문에 생긴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검증 결과 등을 종합 검토해 24일 1심 선고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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