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박람회, 교도소 담장 넘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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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개방교도소서 첫 개최

출소예정 250명 현장 상담

“나가면 아내를 위해 창업해 돈을 벌어야죠. 그전이라도 면회실의 쇠창살 사이로 혼인신고서를 보여주던 아내에게 반지 하나 해주고 싶어요.”

26일 오전 10시 충남 천안시 서북구 신당동 개방교도소에서 법무부 주최로 열린 ‘제1회 출소예정자 취업박람회’. ‘마시는 영양죽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수형자 창업아이템 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재소자 유모 씨(39)는 복역 중에 창업을 준비한 과정을 털어놓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2006년 6월 현존건조물방화치상죄로 5년형을 받고 수감됐어요. 한때의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데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어요. 아내가 아니었다면….”

절망에 빠진 그를 바로잡아준 것은 그를 내치지 않고 아내가 된 대기업 직원 A 씨(30)였다. A 씨는 유 씨가 수감되자 구청을 찾아가 혼인신고를 마친 뒤 면회를 와 쇠창살 사이로 혼인신고서를 보여줬다.

유 씨는 새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직업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아내는 수시로 찾아와 출소하면 창업을 해보자고 권했다. 자신의 직장생활 경험을 전하며 건강과 미용에 좋은 죽 전문점을 만들면 직장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내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유 씨는 수형자 창업아이템 경진대회에 출품된 120여 개의 아이템 가운데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가 보여준 사업계획서에는 기술개발과 시장분석, 소요자금 및 조달계획까지 꼼꼼히 적혀 있었다.

유 씨는 “상금으로 50만 원을 받았고 5일 정도의 휴가가 주어질 것으로 알고 있다”며 “휴가를 나가면 상금으로 아내의 손가락에 예쁜 반지를 끼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교도소 잔디밭에 마련된 60여 개 중소기업체 취업상담 부스에서는 출소 예정자 250여 명이 상담을 벌였다. 이 가운데 서울에 있는 인테리어 회사인 ‘흰돌 인테리어’ 정해두 사장(50)은 상담자들을 ‘형제’라고 불러 눈길을 모았다.

15년 전 부도가 나는 바람에 1년가량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죄로 복역했던 그는 출소 이후 사업을 하면서 출소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고용해왔다. 이날도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기보다는 “우리 회사로 오면 좋고 다른데 취업을 하더라도 어려울 때는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성공적 사회복귀와 재범 방지를 위한 징검다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날 박람회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프로그램. 황희철 법무부 차관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현장 면접을 통해 모두 120명의 재소자가 취업을 확정지었다. 거리가 멀거나 지방에서 미처 올라오지 못해 현장 면접이 어려운 재소자들은 화상면접을 했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 37개월 복역한 뒤 28일 출소하는 이모 씨(55)는 이날 부인과 함께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인 창일산업에 취업하게 됐다. 이 씨는 “한순간의 실수로 어머님과 아내, 자녀에게 정말 시켜서는 안 될 고생을 시켰다”며 “아무런 대책 없이 출소하게 되나 걱정했더니 생계대책이 생겨 희망의 불빛을 보는 듯하다”고 기뻐했다.

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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