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까지 척척… 국산 ‘짝퉁명품’ 다시 활개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경제위기로 되레 수요급증
중국산 줄고 국내제조 늘어
공장 1곳서 3000점 압수도

6일 오전 10시경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출판단지 내 한 조립식 공장. 해양경찰청 외사수사계 소속 경찰관 6명이 승합차에서 내렸다. “계십니까?” 김용현 경위(40)가 굳게 잠긴 정문에 입을 대고 큰 소리로 묻자 갑자기 공장에서 들리던 기계음이 멈추고 정적이 감돌았다. 경찰이 드라이버로 정문을 열고 300m²가 넘는 공장 내부로 들어가자 미로처럼 생긴 복도에는 여러 개의 작업실이 나타났다.

김 경위가 가장 큰 작업실을 열자 40, 50대로 보이는 직원 3명이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재단기와 금형기계, 재봉틀 등이 설치된 작업실 탁자 위에는 해외 유명상표를 모방한 속칭 ‘짝퉁’ 지갑이 가지런히 포장된 채 놓여 있었다. 공장 내부 창고에서는 각종 박스에 담겨 있는 가짜 루이뷔통 지갑 3000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해경이 이날 압수한 짝퉁 명품은 5t 트럭 3대 분량이나 됐다. 김 경위는 “제조 규모가 클 경우 구속을 피해 공장 문을 닫고 아예 잠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로 정품보다 값이 훨씬 싼 짝퉁 명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국산 짝퉁 제조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상표법 위반 단속 건수와 입건자는 2007년 2115건, 2609명에서 지난해 4169건, 5214명으로 각각 급증했다. 올해 8월 말 현재도 각각 2351건과 2835명에 달한다.

국내에 유통되는 짝퉁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통 정식 수입품으로 위장해 대규모로 밀수된다. 그러나 최근 전국 항만과 공항의 물동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가운데 관세청의 집중 단속으로 대규모 반입이 어려워진 틈을 타 국산 짝퉁 제조업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

가방과 지갑, 의류가 대부분인 국산 짝퉁은 중국산 짝퉁에 비해 진품과 거의 흡사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A급’ 대접을 받는다. 국산 짝퉁 지갑 1개의 제조원가는 1만∼2만 원에 불과하지만 서울 동대문·남대문시장 등에서는 중국산보다 비싼 6만∼7만 원에 팔리고 있다. 기술자를 고용해 수선까지 해준다.

이처럼 국산 짝퉁의 인기가 높다 보니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버젓이 국산 짝퉁을 판매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심지어 국내 신용카드회사 영업사원들은 신규 가입자에게 버젓이 국산 짝퉁을 사은품으로 주는 일도 벌어진다. 짝퉁 가방과 지갑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속품도 대량으로 위조하고 있다. 해경은 지난해 3월부터 경기 양주시에 대규모 금형 및 도금시설을 갖춘 공장을 차려놓고 짝퉁 가방과 지갑용 지퍼, 장식 등 100만여 점을 만들어 판매한 민모 씨(45) 등 3명을 8월 입건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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