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토플주제/에밀리 디킨슨

  • 입력 2009년 8월 17일 03시 02분


시대를 앞지른 운율… 문법… 서랍 속에 시를 남기고 간 비운의 뮤즈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30∼1886)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 앰허스트(Amherst)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847년 마운트 홀리요크 여자학원(Mount Holyoke Female Seminary)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월간 애틀랜틱 편집장이자 문학 평론가인 토머스 히긴슨이 그에게 “작품을 로맨틱한 내용으로 수정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 32세인 디킨슨은 강경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이 일로 히긴슨과의 사이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디킨슨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나빠져서 안과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말을 따랐지만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디킨슨에게는 불운이 잇따랐다. 모친의 병간호를 하던 중에 부친이 별세하는 일이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디킨슨은 이후로는 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은 정원 가꾸기, 요리하기, 편지 쓰기, 이웃집 아이들과 놀아주기 정도였다. 디킨슨은 특히 정원을 가꾸고 화초를 재배하는 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시를 쓰다가 56세로 사망했다.

디킨슨은 1855년 목사인 찰스 워즈워스를 만나면서 칼뱅주의(Calvinism)적 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자연과 사랑 외에도 청교도주의(Puritan)를 바탕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뤘다. 이 시들은 독창적인 은유, 뛰어난 참신성을 보였다. 그의 시는 전통 운율의 격식을 탈피해 틀에 박힌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거의 2000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사랑, 죽음, 이별, 영혼, 천국 등을 소재로 한 명상시가 대부분이다. 또 많은 시가 짧은 데다 제목도 붙여져 있지 않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1874년에 200편에 이르는 시를 썼지만 출판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시는 당시의 다른 시들과는 운율과 문법 면에서 많이 달라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겨우 4편의 시가 시집에 쓰였을 정도다. 훗날 여동생이 그의 시를 모아서 시집을 냈는데 그 시집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같은 시대의 영국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와 유사한 점도 있지만, 디킨슨의 시가 훨씬 더 단단하고 굳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는 19세기 낭만파의 시풍보다는 17세기 형이상학(metaphysical)의 시풍에 가까웠다. 운율과 문법에서 파격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디킨슨의 시는 19세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미지즘이나 형이상학적인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됐다.

1855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전시집(全詩集)’ 3권이, 1858년에 ‘전서간집(全書簡集)’ 3권이 각각 간행됐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안희진 영재사관학원 예스영어사관 중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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