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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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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1년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슬픔’
“진상 규명 난리 떨더니 관심 열흘도 안가더라
수사 흐지부지… 이게 뭐냐”
《금강산 관광지구 옆 군사 경계지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남한 관광객 박왕자 씨(당시 53세)가 사망한 사건이 11일로 1주년을 맞는다. 당시 박 씨는 북한군 초병이 쏜 총탄 두 발을 등과 엉덩이에 맞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정부는 즉각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북한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북한 내 한국인 신변안전 보장조치 등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남측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현재까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사고 희생자인 박 씨의 남편 방영민 씨(54)를 만났다. 1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물지 않은 상처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었다.
○ “북한은 뚫을 수 없는 벽이라 체념”
“사고 이후 술을 잘 마시지 않게 됐어요. 술 마시고 들어갔을 때 그 사람 빈 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져서….”
8일 저녁 서울 노원구 상계동. 방 씨는 집으로 찾아간 기자를 보고 “그냥 조용히 잊혀졌으면 좋겠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다가 집 앞 맥줏집에서 그동안 자신이 겪은 심적 고통을 털어놓았다. 방 씨는 “잔소리 하다가도 아침에 일어나면 꿀물도 타놓고 국도 끓여놓았는데…” 하며 아내를 회상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허 참, 내 아내가 북한군 총에 맞아죽을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나.” 평생의 반려자를 잃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사고의 원인은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수사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방 씨는 “당시 보수단체와 언론이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그 관심이 열흘도 안 가더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1년 전에도 정부에 탄원서를 넣거나 북한 규탄집회를 갖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았다”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정부와 북한을 규탄해봐야 뭘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벽도 웬만한 벽이라야 뚫을 생각을 하고 덤벼볼 텐데 북한이 걸린 문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막막한 벽 같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를 대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잘못한 일”이라 덧붙였다.
○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 중”
방 씨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나보고 눈물이 없다며 무심하다고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종종 속에서 불현듯 무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동네 길을 가다가도 울컥해서 울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서서 울었다. 막 군에서 제대한 아들은 더욱 충격이 컸고 북한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격한 감정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아들을 생각하면서 진정시켰다고 했다. 방 씨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부터는 밥도 짓고 밑반찬도 마련하며 혼자 살아가는 길을 터득하는 중”이라고 했다.
방 씨의 큰아들 재정 씨(24)는 2008년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했다. 방 씨는 큰아들에 대해 “요새 엄마 대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한다”며 “생각보다 내 말을 잘 따라주고 잘 버텨줘 다 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아들과 이렇게 술자리를 가지는데 그때마다 ‘과거는 생각지 말고 앞을 보며 열심히 살자’고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방 씨는 북한에 억류된 개성공단 직원과 두 명의 미국 여기자에 대해 묻자 “그래도 그 사람들은 살아 있잖아요. 그럼 돌아온다는 희망이라도 있지…”하고 말끝을 흐렸다. 방 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