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만 달러’ 추징-몰수 불가능… 돈 성격 모호해져

  • 입력 2009년 6월 13일 02시 59분


檢 “뇌물받은 혐의 있다”
盧측 “두번 욕보이는 행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12일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구속기소)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건넨 640만 달러의 ‘운명’도 바뀌게 됐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함에 따라 이 돈의 성격을 뭐라고 단정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640만 달러는 어디로?

640만 달러 가운데 25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와 조카사위 연철호 씨가 설립한 해외 투자법인의 계좌에 남아 있고, 일부는 투자가 돼 있는 상태다. 2007년 6월과 9월에 건네진 140만 달러는 이미 미국 뉴욕 아파트 매입 계약금 등으로 써버린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면 640만 달러는 추징이나 몰수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수사가 종결돼 이는 불가능한 일이 됐다.

결국 640만 달러의 향방은 박 전 회장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대로 ‘빌린 것’이거나 ‘사업 투자금’이라면 그 성격에 맞게 적절한 시기에 돌려주거나 사업 수익이나 손실에 대해 함께 책임지면 된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그동안 검찰에서 “사업을 잘 도와 달라는 뜻으로 노 전 대통령 측에 돈을 건넸다”며 돌려받을 뜻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해 왔기 때문에 이 돈은 그대로 노 전 대통령 가족의 소유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노 전 대통령 혐의 확신…노 전 대통령 측 “두 번 욕보이는 행태” 비난

검찰은 이날 수사 결과 발표문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수사 진행 경과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수사가 정당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지난해 12월 중순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가 설립한 타나도 인베스트먼트의 홍콩 계좌로 500만 달러를 보낸 ‘송금 지시서’를 확보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후 관련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홍콩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고 올 3∼4월 홍콩에서 도착한 요청자료를 분석해 연 씨에게 돈이 건네졌음을 최종 확인했다는 것. 100만 달러와 40만 달러 부분도 관련자 진술과 달러 환전 자료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특히 “박 전 회장의 자백과 관련자 진술, 송금 및 환전 자료 등을 통해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인정되지만 돈 받은 사람을 기소하지 않는 경우 돈 준 사람도 기소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발표문에 명시했다. 그동안의 수사결과 드러난 혐의가 신빙성이 높다는 점을 확신한다는 얘기다. 검찰은 발표문에 별도의 항목을 만들어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가 최소한의 범위에서 예우를 갖춰 이뤄졌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이러한 발표에 강하게 반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5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검찰이 주장하는 노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책임회피와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검찰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수사기록은 영구보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의 진실은 법률적으로 ‘영구미제’ 상태가 됐다. 검찰은 이날 수사 발표문에서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9월∼2008년 2월 박 전 회장에게서 4차례에 걸쳐 640만 달러 등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은 1억 원 상당의 스위스제 피아제 보석시계 2개 △2007년 6월과 9월 권 여사와 딸 노정연 씨가 각각 받은 100만 달러와 40만 달러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와 조카사위 연 씨에게 건네진 500만 달러를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수사 과정에서 “박 전 회장에게 청탁을 받거나 돈을 요구한 사실이 없고 가족들의 금품 수수 사실은 퇴임 이후에 알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반면 검찰은 박 전 회장 등 관련자들의 진술과 출금 및 송금 명세 등을 종합할 때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속영장 청구냐 불구속 기소냐의 선택만 남겨둔 상황이었던 것.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상황이 뒤바뀌면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분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검찰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와 관련한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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