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권 박탈 사형제 없애야 선진국 가능”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살인사건 한해 1000건… 폐지상황 아니다”

위헌심판 공개변론… 헌재소장은 “폐지 기대”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11일 사형제 폐지 여부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국회가 법으로 폐지하거나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는 식으로 사형제가 폐지되기를 나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사형제 위헌 여부 공개변론 과정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형 선고 건수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소장의 견해가 곧바로 헌재의 최종판단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1996년 11월 사형제에 대해 7 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헌재가 11일 공개변론을 연 것은 지난해 9월 26일 광주고법이 여행객 4명을 물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어부 오모 씨(71) 사건과 관련해 사형제에 대해 위헌 심판을 제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오 씨의 변호인과 법무부 측이 양쪽 당사자로, 법학교수 2명이 참고인으로 나왔으며 사형제 위헌론(폐지론)과 합헌론(유지론)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맞섰다.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장인 이상혁 변호사는 “사형제는 인간 존엄성의 꽃인 생명권을 다른 사람이 박탈할 수 있게 한 제도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만큼 이제는 사형제를 폐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 대리인으로 나온 성승환 변호사는 “사형제는 형벌을 예방하고 사회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정당성이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매년 1000여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등 사형제를 폐지할 만한 상황 변화가 없다”고 맞섰다.

한국은 현재 59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1997년 이후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국제사회에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알려져 있는 한편 16∼18대 국회에 사형폐지 특별법안이 계속 발의돼 왔지만 처리되지 않고 있다. 헌재는 공개변론을 거친 사건을 통상 6개월 안에 결정하는 만큼 올해 안에 사형제에 대한 위헌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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