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한국농업대학 응시자중
고학력자가 70% 이상
‘귀농학교’ 입학경쟁도 치열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대기업 해외영업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콩을 비롯해 유전자변형 식품이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지요. 순수한 우리 작물을 재배해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이모 씨·49)
“건설회사에서 20년가량 근무했는데 경기침체로 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시골에서 형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박모 씨·39)
지난달 26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업대 본관 117호 면접장. 한국농업대가 운영하는 ‘경기 귀농(歸農)·귀촌(歸村) 학교’ 지원자들은 면접관 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각자의 포부를 밝혔다. 이들은 귀농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했다.
○ 도시 엘리트도 다수
한국농업대 서규선 농업인교육원장은 얼마 전 ‘경기 귀농·귀촌 학교’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국내 명문대 출신뿐 아니라 미국 유명 대학의 석·박사 학위 소지자까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서 원장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응시자가 70% 이상”이라며 “응시자가 많아 귀농을 위한 준비가 어느 정도 돼 있고 의지도 강한 사람만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삶의 터전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바꾸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4년 동안 증권사 펀드매니저로 일한 김모 씨(45)는 “올해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농촌에서 특용작물을 재배할 계획”이라며 “인터넷과 각종 자료, 전문가 조언 등을 통해 시장성 있는 작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면접 응시자 100여 명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수억 원에 이르는 귀농자금은 물론 시골에 농사지을 땅까지 마련했다고 했다. 연구원, 대기업 직원, 공무원 출신 등 경력도 다양했다.
준비 안된 ‘묻지마 귀농’ 줄고
특용작물 재배등 목표 뚜렷
경험 축적 사전대비 필수
○ 철저한 준비로 달라진 귀농 풍경
최근 귀농 및 귀촌 교육을 실시하는 각 교육기관은 늘어난 응시자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다. 50명 정원으로 5월부터 시작된 한국농업대의 ‘경기 귀농·귀촌 학교’ 과정에는 259명이 응시했다. 5.2 대 1의 경쟁률이다. 충남의 천안연암대는 3월 25명을 선발한 5기 귀농학교에 130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5 대 1을 넘어섰다. 이 대학 관계자는 “2006년 시작한 1기부터 지난해까지는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아 응시하면 대부분 합격했는데 올해는 경제위기 탓인지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직후에도 귀농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1997년 이전 한 해 평균 1000가구 미만이던 귀농인구는 1998년 6409가구, 1999년 4118가구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2000년 이후 귀농가구 수는 매년 1000∼2000가구 수준을 유지했다.
이번에는 외환위기 때와 귀농의 내용이 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도시인의 귀농 경험이 축적되면서 예전 같은 ‘묻지 마 귀농’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귀농 준비를 거쳐 해외에서 시장성이 검증된 새로운 특용작물을 재배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해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 중인 최모 씨(47)는 “지난해 서울 근교에 작은 텃밭을 사 주말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귀농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전문적인 귀농교육을 받고 1, 2년 후 지방으로 이사해 약용작물을 재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사전 준비 없는 귀농은 백전백패
귀농하는 사람은 많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비율은 3명 중 1명에도 못 미친다. 특히 충분한 준비 없이 ‘농사나 짓자’는 식으로 귀농하면 100% 실패한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지적이다. 박민선 농협대 교수는 “귀농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시점부터 최소 몇 년 동안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귀농을 결심했다면 천안연암대, 한국농업대, 전국귀농운동본부 등 교육기관에서 귀농교육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배 작물을 정하는 방법과 농기계를 사용하는 법, 농가에서 생활하는 요령 등 귀농에 꼭 필요한 사항을 배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귀농을 결심했다고 처음부터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집을 새로 짓고 땅을 사기에 앞서 빈 농가에 머물며 땅을 빌려 1, 2년 동안 농사를 지어보라는 것.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김성하 교수는 “귀농하고 처음 3∼5년은 손해만 나지 않아도 성공이기 때문에 초기 자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도시인들의 귀농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에 191억 원을 편성했다. 귀농자금 대출은 물론 귀농교육 자금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농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정보센터가 운영하는 인터넷 통합농업교육정보시스템(www.agriedu.net)을 통해 무료 귀농교육도 받을 수 있다. 농식품부는 또 다음 주에 추가적인 귀농 귀촌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귀농 희망자를 위한 전용 상담전화를 개설할 예정이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동아닷컴 인기화보
[화보]모델 ‘제라 마리아노’ 숨막히는 몸매
[화보]김연아, 빙판 밖에서도 매력 만점
[화보]T-50 ‘블랙이글스’ 곡예 비행
[화보]손태영 ‘망사패션’ 파격…출산 3개월 무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