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 얼마나 속속들이 알기에…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10분


보호하려는 盧 vs 구속하려는 檢 치열한 기싸움

노무현 전 대통령이 7일 오후 전격적으로 내놓은 사과문은 ‘정상문 구하기’의 성격이 짙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은 사람이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아니라 바로 부인 권양숙 여사라는 것을 실토했다는 점에서는 ‘자기 고백’이지만, 내용을 잘 뜯어보면 정 전 비서관의 구속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돈 문제에서 정상문은 곧 노무현”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돈거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7일 정 전 비서관을 체포한 것도 정 전 비서관의 개인 비리 규명보다는 퇴임 직전에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 보낸 500만 달러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한 포석이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야말로 500만 달러가 오가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 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를 소상하게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정 전 비서관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그 혐의는 정 전 비서관 것이 아니고 저희들 것입니다”라고 못 박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정 전 비서관을 우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또는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한 뒤 500만 달러와 노 전 대통령 간의 관계를 규명하려던 검찰의 전략은 흐트러질 수 있다.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이 먹힌다면 구속영장은 기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검찰로서는 전반적인 수사계획이 뒤틀어지는 반면 노 전 대통령 측은 법률적으로 죄가 될지 불분명한 권 여사를 내주는 대신 정 전 비서관은 물론이고 노 전 대통령도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수사팀은 7일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직후 장시간 대책회의를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인지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만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 8일 “사과문에선 돈을 받은 일시, 장소, 금액 등이 전혀 표시되지 않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포함되는 건지 모르겠다. 권 여사의 등장은 어제 처음 알았다”고 밝힌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의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정 전 비서관 체포’라는 포석을 깔자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가 돈을 받았다’는 고육지책의 맞수를 던진 것을 두고 양측이 정 전 비서관의 신병 문제를 놓고 고난도의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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