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그림 로비 의혹, 그 미로의 끝은?

  • 입력 2009년 1월 15일 16시 30분


◆그림 로비 의혹, 그 미로의 끝은?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월 15일 동아뉴스 스테이션입니다.

전·현직 국세청장이 인사 청탁 대가로 고가의 그림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수뢰혐의로 수감 중인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한상률 현 국세청장입니다.

(김현수 앵커) 당사자들 이외에는 알 수 없을 법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요, 오늘은 '그림 로비' 사건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사회부 사건팀의 유덕영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박 앵커) 유 기자, 청탁의 대가로 사용됐다는 그림이 화랑에 매물로 나오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면서요?

(유덕영) 예, 그렇습니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고 최욱경 화백의 추상화 '학동마을'이 서울 종로구의 G화랑에 매물로 나오면서부터입니다. 이 그림은 시가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그림인데요, 이 그림을 팔아달라고 가져온 사람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 모 씨였습니다.

이 씨는 남편이 청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 초 당시 차장이던 한상률 청장의 부인 김 모 씨로부터 이 그림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는 1급 공무원에 대한 인사가 있을 무렵이었는데요, 김 씨가 전 전 청장의 집으로 직접 찾아와 '좋은 그림이니 잘 간직하시라'고 말하고 놓고 갔다는 겁니다.

이 씨는 그림에 대해 잘 몰라 그 그림이 고가인 줄도 몰랐고, 이사를 하거나 할 때 선물하는 정도의 작품으로 생각해 그냥 놔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말을 조금 바꿨는데요, 한 경제신문과 전화통화에서는 시내 음식점에서 부부동반으로 4명이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청장 부부가 지방국세청장 K 씨를 밀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림을 건넸다고 말했습니다.

K 씨는 차기 청장 자리를 두고 한 청장과 경쟁하던 인물이었는데, 2007년 4월 사표를 냈습니다.

(김 앵커) 그런데 이 씨는 왜 그림을 팔려고 내놓은 것인가요?

(유)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전 전 청장은 뇌물수수로 3년 6월의 형을 받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세 차례의 재판을 거치면서 변호사 비용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도 매물로 내놓았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팔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결국 평소 친분이 있던 서울 종로구의 G갤러리 홍모 대표에게 판매를 위탁했습니다.

그러나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전 전 청장은 자신의 재판 변론을 맡았던 박영화 변호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전 전 청장은 자신의 부인이 여러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야기한 내용은 사실무근이고, 흥분해서 경거망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박 변호사를 통해 전했습니다.

한 청장도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그림을 소유한 적도 없다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앵커) 그럼 사건이 일단락된 건가요?

(유) 당사자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만 여러 가지 의혹이 속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전 청장의 부인 이 씨가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 로비 의혹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제기할 수 있었을까'하는 점입니다. 사건이 알려진 뒤 이 씨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있습니다.

또 국세청 현직 간부가 12일 전 전 청장을 면회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 간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두 사람 사이에서 모종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간부는 면회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전 전 청장이 아내의 말을 하루 만에 180도 뒤집은 배경에는 자신의 형량이 추가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사 청탁과 함께 고가의 그림을 받았다는 이 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뇌물죄로 추가 기소돼 형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씨가 그림을 위탁한 G갤러리 홍모 대표의 남편도 현직 국세청 고위 간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밖에 한 청장은 지난해 12월 말 경북 포항지역의 기업인들과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함께 해 청와대로부터 '구두 주의'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곧 다가올 국세청장 인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 앵커) 진실을 밝히는 핵심은 그림의 유통경로가 될 것 같은데요.

(유) 예. 유통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전 전 청장이 한 청장으로부터 그림을 받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그림의 유통경로는 오리무중인 상태입니다.

학동마을은 2005년 5월부터 7월까지 서울 종로구의 K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에 전시된 이후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후 2008년 10월 이 씨가 G갤러리 홍모 대표에게 판매를 위탁하면서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관건은 그림이 자취를 감췄던 3년 여 동안의 행방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련자들은 그림의 이동경로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회고전에서 학동마을을 전시했던 K갤러리 이 대표도 전시 두 소장자에게 그림을 모두 돌려줬다고 말했지만 소장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최 화백 사후에 작품 관리를 맡아온 최 화백의 여동생도 학동마을은 최 화백이 생전에 처분해 이후 유통경로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전 전 청장의 부인 이 씨와 그림을 가지고 있는 홍 씨가 모두 연락을 끊고 있는 상태지만 이들의 말이 진실을 캐는 단서가 될 전망입니다.

(박 앵커) 전 현직 국세청장 부인 등 국세청 수뇌부 부인 3명이 등장하면서 과거의 '옷로비'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유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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