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대가족 는다

  • 입력 2008년 10월 31일 14시 58분


결혼 5년차인 서모(31·경기 부천시) 씨는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고 지난달 말 부모님 댁으로 이사했다. 1억5000만 원 대출을 끼고 경기도 파주 신도시에 30평형대 아파트를 샀지만 집값은 오르지 않고 대출 금리만 뛰어서다. 최근 이자가 65만원에서 85만원으로 20만원이나 늘었다.

서 씨는 "지금은 이자만 내고 있지만 조만간 원리금을 같이 상환하게 되면 생활비를 줄여도 대출금 갚기가 어려울 것 같아 부모님과 함께 사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육아 부담을 덜게 되면 본격적으로 맞벌이를 할 예정이다.

● '불황형 대가족'이 늘어난다.

서씨는 이번 이사로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6명이 모여 사는 대가족이 되었다. 서씨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살림을 합쳤지만 아이 교육에는 대가족이 훨씬 바람직하다"며 "어린이집에 다니며 자주 병을 앓던 아이가 건강해졌고 사람이 많으니 활기차졌다"고 대가족의 장점을 설명했다.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서씨와 같이 자진해서 시집살이나 처가살이를 택하는 '불황형 대가족'이 늘고 있다. 주택 대출 이자는 늘고 생활이 팍팍해지자 부모님과 집을 합쳐 위기를 타개해가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이지만 가족이 뭉치게 되면서 가족간 유대가 강화되기도 한다.

이모(30·인천시 남동구) 씨는 결혼을 하면서부터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으나 예상보다 비쌌다. 마침 장모님이 전세를 옮기려던 터라 돈을 합쳐 1억 2500만 원 하는 아파트를 샀다. 장모님을 모시지 않았다면 대출 받은 돈이 늘어났을 것이고 금리가 치솟는 요즘에는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전기기사인 이씨는 "현장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닐 일이 많은데 집을 비우더라도 장모님이 계시니 아내 걱정을 덜 해도 되고 좋다"며 "대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분산하는 지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화려한 싱글? 뭉쳐야 산다!

싱글 생활을 청산하는 경우도 있다. 정모(28·서울 서대문구) 씨도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 예정이다. 8년 동안 자취 생활을 한 탓에 다시 부모님과 산다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잠깐 망설였지만 생활비 부담도 덜고 원룸보다는 편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정씨는 "혼자 지내는 것보다 편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아프거나 비가 올 때 옆에 부모님이 계시니 든든하다"고 흐뭇해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배영 교수는 이와 같은 가족 형태의 변화에 대해 "대가족처럼 가족 단위가 커지면 '규모의 경제'와 같은 이점을 누릴 수 있어 불황기에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개인의 선택 뿐 아니라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므로 가족 구성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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