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손은 상처 보듬고 말로는 흥분 달래죠”

  • 입력 2008년 10월 9일 02시 59분


7일 오후 관악소방서 신림119안전센터 이희분 소방장이 응급차 안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 소방장은 1일 ‘최고여성소방공무원’으로 선정된 13년차 구급대원. 서울시에서는 현재 270명(전체 소방공무원의 5%가량)의 여성 소방공무원이 활동하고 있다. 장윤정 기자
7일 오후 관악소방서 신림119안전센터 이희분 소방장이 응급차 안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 소방장은 1일 ‘최고여성소방공무원’으로 선정된 13년차 구급대원. 서울시에서는 현재 270명(전체 소방공무원의 5%가량)의 여성 소방공무원이 활동하고 있다. 장윤정 기자
■ 최고 여성소방공무원 선정 이희분 소방장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지만 응급차 안에서 인생도, 보람도 찾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딸 이야기를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던 이희분(39) 소방장은 출동 사이렌이 울리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13년차 구급대원으로 변신했다. 달리는 응급차에서 능숙하게 응급 처치를 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달래는 모습에서는 베테랑 대원만의 면모가 풍겼다.》

현장 분만만 8번 치른 ‘응급처치 달인’

“출동 급한데 골목길 막힐 때면 식은땀”

○ 응급차를 타고 인생을 만난다

7일 야간 근무를 하는 이 소방장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서울시 관악소방서 신림119안전센터. 잠시 이 소방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출동 사이렌이 울렸다.

신고지역은 신림6동과 13동 사이로 신림센터의 관할이 아니었다. 하지만 담당이 이미 다른 곳에 출동을 나가 있어 멀더라도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10분여 차로 달렸을까. 도착한 현장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50대 취객이 눈 부위가 심하게 부은 채 입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소방장과 동료대원들은 보호대로 목을 지지하고 들것을 이용해 응급차에 환자를 실었다. 이 소방장은 응급처치를 하며 혹시나 머리에 이상이 있을까 연방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어쩌다가 이렇게 다치셨어요?” “술 먹다가 트러블이 좀 생겼어.”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몰라, 성도 없어.”

보라매 병원에 환자를 인계하고 안전센터로 복귀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사이렌이 울렸다. 이번엔 신림3동, 마음은 급한데 좁은 골목길은 뚫리질 않는다.

“주택가 언덕길에서 마을버스라도 만나면 차에 날개를 달고 싶은 심정이지요.”

그 순간, 언덕 저쪽 편에 다급한 보호자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나이가 94세고 치매기가 있어 집에만 계시는데 어떻게 문을 따고 나가셨는지…. 넘어져서 피가 나는 걸 윗집에서 알려줬어요.”

집에 들어가 재빠르게 이 소방장이 넘어질 때 찢어진 할머니의 이마에 붕대를 붙이자 백발 할머니에게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응급차에서 보호자를 안심시키며 대화를 하는 것도 이 소방장의 몫이다.

“도대체 어떻게 나오셨는지 모르겠네요.” “치매기가 있는 분은 밤이 되면 오히려 돌아다니고 싶어 하시니 이름표를 꼭 달아드리세요.”

환자를 병원에 호송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린 이 소방장이 말을 건넨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응급차 안에 있다 보면 별의별 인생 이야기가 다 나와요.”

○ 집에선 세 딸의 엄마

1일 ‘여성소방의 날’에 최고 여성소방공무원으로 선정된 이 소방장은 간호사 특채로 1995년 근무를 시작해 13년째 구급활동을 하고 있는 베테랑 대원. 현장분만만 8번이나 경험한 응급처치의 달인이다.

하루 평균 10차례 출동하며 별별 환자들을 다 만나지만 아무래도 세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아이들과 관련한 사고일 때 가장 가슴이 찡하다.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이 도와주고 9월 19일부터 시범적으로 3교대 근무가 시작되면서 근무 여건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소방공무원으로, 엄마로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게 보통일은 아니다. 특히나 친정어머니께 죄송하다는 이 소방장.

“상은 엄마가 타셔야 했죠.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시는데 얼마 전 같이 돌봐주던 친정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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