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좋아서…” 해녀학교 졸업하는 ‘海男’들

  • 입력 2008년 8월 29일 14시 05분


한수풀해녀학교 학생들.
한수풀해녀학교 학생들.
‘한수풀해녀학교의 1회 졸업식이 열렸다.
‘한수풀해녀학교의 1회 졸업식이 열렸다.
“해남(海男)이 되려고 작심하고 내려 왔지만 쉽지가 않네요.”

29일 오후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 앞. 물질을 하며 소라 전복 등 수산물을 채취하는 제주도 해녀(海女)의 전통을 잇기 위해 개설된 ‘한수풀해녀학교의 1회 졸업식이 열렸다. 32명의 졸업생은 30, 40대 여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중 남자 3명도 끼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올해 52세인 최춘호씨는 자영업을 하다 ‘해남’이 되기 위해 이 학교에 다녔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거주하는 최씨는 매주 한 차례씩 제주도에서 열리는 수업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서울과 제주도를 오갔다. ‘한수풀해녀학교’의 수업료는 무료였지만 최씨가 그동안 비행기삯 등을 포함해 들인 비용은 500만원이 넘는다. 무엇이 그를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

최씨는 “취미로 물질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직업적으로 해남이 되고 싶었다. 남들은 농촌으로 돌아가 제 2의 인생을 경작하려 하지만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문을 연 ‘한수풀해녀학교’는 5월부터 8월까지 매주 1회, 금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 동안 실습을 통해 물질을 가르쳤다. 임명호(50) 귀덕2리 어촌계장과 인근해녀회 소속 해녀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강사로 나섰다. 수심 2m 안팎의 바다에서 수영과 물질, 해산물 채취, 물속 방향 탐지, 수산물채취도구 사용법 등을 가르치고 배웠다.

한림읍사무소 김성남 계장은 “해녀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일반인들에게 이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해녀학교의 문을 열었다”며 “이 같은 해녀학교 개설은 국내 최초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학교에서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배움에 나섰던 최씨는 평소 사업을 하며 스킨스쿠버 등에 관심이 많았다. “제 별명이 물개였습니다. 바다가 좋아 온 몸으로 물을 경험하며 지낼 수 있는 직업을 원했는데 마침 해녀학교 학생을 모집한다 해서 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에서 물질을 배우며 독특한 해녀문화로 인해 진입장벽을 느꼈다고 했다.

“해녀조직이 여성 중심으로 되어 있다 보니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벽 같은 것이 있더군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렇고 일 끝나고 옷 갈아입을 때도 탈의실 같은 것이 여성중심으로 되어 있고…. 또 제주도 해변은 기존 해녀조직을 거치지 않으면 물질을 하기 힘들어요. 각 해녀조직이 해변의 일정 구역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제주도가 안 된다면 다른 지역의 해변으로 내려가서라도 물질을 하며 살 겁니다.”

최씨는 물질을 해서 큰 돈을 벌려는 생각은 없다. “사실 수산물 채취량도 줄어들고 돈벌이가 잘되는 직업으로 보이지는 않습디다. 저는 그저 물이 좋아 물가에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남’ 이한영(35)씨도 경기도 고양시의 집에서 매주 내려와 물질을 배웠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 역시 스킨스쿠버에 관심이 많아 참가한 경우. 그는 “공기통 없이 잠수하는 해녀들의 잠수기법이 궁금해서 해녀학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학교생활을 통해 “모든 어머니들이 존경스럽지만 제주도의 해녀 어머니들을 더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녀들의 노동량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솔직히 수영에는 익숙해서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녀들이 수산물을 채취해서 몇 kg씩 달하는 수산물을 뭍으로 꺼내고 이를 재가공하고 다시 운반하는 과정이 무척 고되 보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해녀들의 끈끈한 단결력도 보았다. 이씨는 “해녀들이란 일종의 노동조합인 ‘길드’ 조직처럼 보였다. 노동과 경조사 및 일상생활에서 서로 상부상조한다. 원시공동체의 모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녀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해녀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것은 기존 해녀들이 은퇴하지 않고 있는데다 새로운 해녀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해변에서 수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구역과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존 해녀조직들의 구역지키기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풍토가 해녀들을 바다의 파수꾼으로 만들고 있다고 이씨는 보았다. “각 해녀조직이 자신의 구역뿐 아니라 인근 구역이 오염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바다가 오염되면 해녀들이 채취할 수산물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결국 바다의 파수꾼이다”는 것이 이씨의 시각이다.

한편 제주도 토박이 남자로 해녀학교에 참가한 오지남(36·건축업)씨는 “어머니가 30년 이상 물질을 하셨고 최근 형수님도 물질에 나섰다. 형수님의 권유를 받고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어머니 따라다니며 물질을 꽤 했기 때문에 솔직히 새로운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해녀가 되면 각종 의료 혜택 등을 받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녀등록증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녀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곧바로 해녀가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몇 주간의 짧은 교육으로는 본격적으로 물질을 하기에 미흡하다는 것. 또한 물질에 대한 교육체계 등이 조금 더 가다듬어져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본격적인 물질을 위해서는 제주도의 해녀회에 가입해 다년간 그들과 함께 행동하며 인정을 받아야한다는 설명이다. 해녀학교는 그 전의 기초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독특한 해녀들의 활동에 대한 호기심이 이 학교에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끌어들이고 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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