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49.5㎡에 꽉 찬 새 꿈

  • 입력 2008년 7월 15일 06시 42분


남편 잃은 필리핀 이주여성 레니카 씨

이웃 도움으로 새 집 짓고 벅찬 집들이

11일 전남 담양군 대덕면 상운마을. 필리핀 이주여성 레니카 지반카야(32) 씨 집에서 조촐한 잔치가 열렸다. 조립식 패널로 아담한 집을 지은 레니카 씨의 집들이 행사였다.

마을 부녀회와 함께 마련한 술과 음식으로 손님들을 대접하던 레니카 씨는 “이렇게 멋진 집을 갖게 될 줄 몰랐다”며 싱글벙글했다. 초등학교 2학년 수윤이와 여섯 살짜리 애빈이 자매는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수윤이는 꽃이 그려진 분홍색 커튼을 가리키며 “우리 엄마랑 같이 골랐다”며 자랑했다.

잔치가 무르익자 김용각(68) 이장이 “집들이 소감을 들어보자”며 레니카 씨를 불렀다.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 떠난 빈자리는 너무 컸습니다. 딸 둘을 저 혼자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는데….”

주머니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던 레니카 씨는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멋진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장님, 남 사장님, 면사무소 계장님 감사합니다.”

레니카 씨는 9년 전 한국으로 시집왔다. 딸 둘을 낳고 화목하게 살던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10월. 소 값이 떨어지고 빚이 늘자 남편이 극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것이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레니카 씨는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까지 비워야 할 형편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었다. 수윤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모금운동을 벌이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온정을 보탰다.

광주에서 사업을 하는 남장희(62) 씨 형제가 보낸 1050만 원으로 살고 있는 집터를 사들여 등기를 했다. 하지만 낡은 집이 문제였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비가 새고 창문은 떨어져 나가 비닐로 바람을 막을 정도였다.

레니카 씨의 딱한 사정을 안 담양군이 노후주택사업비 1300만 원을 지원하자 남 씨는 650만 원을 또 내놨다.

필리핀에서 시집와 레니카 씨와 한동네에서 살고 있는 조안 콤프라(32) 씨는 “주민들이 집을 지을 때 자기 일처럼 나서 담장을 쌓고 텃밭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들이 선물도 넘쳐났다.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레니카 씨 집을 방문했던 GS칼텍스 광주저유소 빛고을 사회봉사단은 탱크로리를 몰고 와 난방용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채워줬다.

본보 지난해 12월 25일자 A12면 참조 ▶“이웃 희망선물에 새꿈이 싹텄네요”

담양읍 LG전자에서는 가스레인지를 기증하고 남 씨는 장롱과 화장대를 선물했다.

방 두 칸에 화장실이 딸린 49.5m²짜리 보금자리를 갖게 된 레니카 씨는 고마움의 표시로 시루떡을 돌렸다.

레니카 씨는 “이국땅에서 꿈과 희망을 갖게 해 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며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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