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긁는 홈으로 내 정보가 샌다?

  • 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신용카드 가맹점 ‘POS 단말기’ 상당수

결제때 정보 자동저장… 복제 피해 우려

판매시점 - 매출관리 편리

가맹점 3곳중 1곳꼴 사용

신용카드 발급기 있으면

손쉽게 ‘쌍둥이’ 제작 가능

당국, 위험 알면서도 방치

시중의 신용카드 가맹점에서 쓰이는 일부 카드결제용 단말기가 고객이 신용카드를 결제할 때 카드 번호, 유효기간 등의 카드정보를 자동으로 저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남겨진 카드 정보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카드발급기에 입력하면 복제카드를 만들 수 있다. 자칫 카드 정보가 유출될 경우 대규모 카드 위조 등 대형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더구나 카드 정보의 용량은 숫자 20∼40개에 불과해 단말기 내에 거의 무한정, 무기한 저장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이런 사실을 뻔히 알고도 감독 법규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서둘러 규정을 마련해 해당 단말기들을 교체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대형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카드 복제 너무 쉬워

모든 카드 결제단말기가 개인의 신용카드 정보를 자동으로 저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단말기는 주로 가맹점의 판매 시점이나 매출 관리 등이 가능하도록 한 ‘포스(POS)단말기’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의 신용카드 가맹점은 177만여 곳. 이 중 약 50만 곳의 가맹점에서 포스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카드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국내의 한 ‘밴(VAN) 회사(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에서 카드 결제정보를 중개하는 업체)’ 관계자는 “카드의 결제취소 등을 쉽게 하기 위해 카드 정보가 저장되는 단말기를 선호하는 가맹점이 많다”며 “시중에서 쓰이는 포스단말기의 대부분은 결제한 카드 정보가 그대로 저장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당국자도 이를 인정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밴 회사의 도움을 받아 카드 결제기에 남겨진 정보로 기자의 카드를 직접 복제해 봤다. 마그네틱 띠에 새로운 카드 정보가 저장된 쌍둥이 카드가 10분 안에 만들어졌다. 취재팀이 이 카드를 일반 가맹점에서 써 봤더니 원래 카드와 똑같이 결제가 가능했다. 카드 발급기는 시중에서 수십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밴 회사 관계자는 “저장된 정보는 신용카드 번호와 유효기간, CVC코드(카드 뒷면 숫자 중 마지막 3자리) 등으로 이 정보만 있으면 사용한 카드와 똑같은 카드를 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포스단말기 프로그램 제작업체 관계자는 “프로그램에 따라서 카드 정보가 저장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포스단말기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유사 범죄 잇달아

국내 가맹점에서 결제한 신용카드 단말기 정보로 복제카드를 만들어 쓴 사례나 이로 인한 피해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사한 범죄는 최근 몇 년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현금인출기 안에 불법으로 카드정보 판독기를 설치한 뒤 이를 이용해 500여 장의 신용카드 정보로 복제카드를 만들어 1억여 원의 현금을 빼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신한카드도 올해 초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쇼핑몰 직원이 자택으로 찾아와 카드로 결제할 경우 쇼핑몰 직원이 결제단말기 대신 카드판독기를 통해 카드 정보를 얻어가는 사례가 있다”며 고객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카드판독기는 결제단말기와 모양이 비슷해 일반인들은 구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단말기에 저장된 카드 정보를 이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카드 복제 사건을 주로 담당한 한 경찰 관계자는 “체인점의 경우 점포마다 포스단말기가 전산망으로 이어져 있어 이를 해킹하면 대량 복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많은 해외 온라인 사이트는 카드 번호와 유효기간만 알면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결제가 가능한 곳이 많아 큰 피해가 우려된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POS 단말기::

판매시점관리(POS·Point of Sale) 단말기. 개인용 컴퓨터(PC)에 카드 결제 장치를 달아 판매 시점의 상품명이나 가격 등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단말기이다. 이 중에는 고객의 카드 정보를 함께 저장하는 단말기가 많다. 종합적인 매출 관리를 해야 하는 대형 마트는 물론 소형 가맹점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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