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 똑바로 알자” 노사 ‘거꾸로 타임’

  • 입력 2008년 5월 2일 02시 59분


DHL코리아, 근로자의 날 ‘역지사지 실험’

《근로자의 날 하루 전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염리동 DHL코리아 회의실. 글로벌 특송업체인 이 회사의 임원 15명이 싱가포르 DHL 아시아태평양 본부 임원들과 스피커폰으로 원격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회의실 상석(上席)에는 ‘Honorary CEO(명예 최고경영자)’라는 이름표를 단 조영곤 대리가 앉아 있었다. DHL코리아 강북서비스센터 소속인 그는 10년차의 ‘베테랑’ 배송직원. 한편 조 대리가 일일 CEO로 변신한 동안 앨런 캐슬스 DHL코리아 사장은 현장에서 일일 배송직원으로 뛰며 구슬땀을 흘렸다.》

DHL코리아는 ‘노사교감(勞使交感)’을 통해 소통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역할을 바꾸는’ 실험에 나섰다. CEO와 근로자가 서로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자는 취지였다.

○ 일일 CEO로 결재 끙끙

이날 회의시간은 1시간 정도 예상했지만 30분이 더 걸렸다. 성과 산출기준에 대해 아태 본부와 한국법인의 견해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부는 화물 개수, 한국법인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자고 다르게 주장한 것이다.

조 대리는 “회의가 빈틈없이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답을 내야 하는 CEO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전 원격회의를 마친 그는 곧바로 현장경영 실천에 나섰다. 스포츠 활용 마케팅, DHL의 옛 유니폼들을 활용한 이벤트 등 그의 10년 배송경험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회사 측에 전달했다. 회사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일일 CEO 사무실 책상에는 직원 채용계획, 접대비 청구 등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쌓여 있었다. 캐슬스 사장의 도움으로 결재를 한 조 씨는 “사인하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다른 기업과의 거래를 결정할 때는 기업 정보는 물론이고 관련 업계의 동향도 숙지하고 있어야겠다”고 덧붙였다.

○ 일일 배송직원으로 땀 뻘뻘

같은 날 오후 1시 캐슬스 사장은 노란 유니폼을 입고 땀을 흘리며 화물을 날랐다. 서울 마포구 일대 업체 6곳을 3시간 동안 돌며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물건을 전달하고 결제를 받았다.

그는 “현장에서 직접 뛰어보니 배송직원이야말로 ‘회사의 특사(ambassador)’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객들이 배송직원을 통해 우리 회사를 기억하고 다시 찾는 것을 보고서 직원들이 회사의 소중한 자산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매 순간 배송시간 압박을 이렇게 심하게 받는 줄 미처 몰랐다”고도 했다. 배송시간을 맞춰야 하는 직원들을 위해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캐슬스 사장은 “이번 체험을 통해 직원 한 명 한 명이 회사 발전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며 “앞으로 현장을 자주 방문해 직원들과 경영계획을 공유하는 자리를 활성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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