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 '때려치우고 싶다'

  • 입력 2008년 4월 20일 16시 36분


제과업체 A사의 소비자 상담실로 최근 한 소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A사가 제조한 빵에서 소주 병뚜껑이 나왔다"는 이 소비자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A사는 서둘러 이 소비자에게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덮었다.

A사 관계자는 "빵에 병뚜껑이 들어갈 가능성은 0%이지만 괜히 공론화됐다가 이미지가 손상되거나 매출이 줄어들까봐 두려웠다"며 "잘잘못을 따지는 과정에서 입는 피해가 합의금보다 비싸기 때문에 서둘러 요구하는 돈을 줬다"고 밝혔다.

●'생쥐깡' 이후 공갈 협박 일상화

'새우깡' '참치 캔' 등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이후 제과 및 외식 업계에 허위로 피해보상을 요구해 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식품 업체들이 '이미지 손상'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는 점을 들어 있지도 않은 사실로 공갈 협박을 하고 '조용히 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고 있다.

업체들은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 보다 잡음이 생길 여지를 차단하는 게 낫다"며 이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고 있어 공갈협박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외식업체 B사는 이른바 '생쥐깡' 파동 직후 고객 K씨로부터 합의금 1억원을 요구받았다.

K씨는 3월 B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 "접시에 이물질이 묻어있다"며 복통을 호소했다.

매장 지배인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뒤 K씨는 병원으로 가 위내시경 등의 진료를 받았다.

당시 의사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K씨는 10여일이 지나 다시 매장을 찾아와 또 복통을 호소했다.

지배인은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으나 K씨는 미리 작성해 온 진정서를 보여주며 "1억원을 주지 않으면 진정서를 인터넷 및 언론에 뿌리겠다"고 말했다.

B사는 아직도 K씨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아이 건강 20살까지 책임져라"

유가공업체 A사는 최근 "평생의료보험을 들어 달라"는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A사가 만든 제품을 먹은 아이의 부모가 "제품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며 회사 측에 합의금 5000만원을 요구했다.

아이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이 제품을 2년 동안 먹어온 만큼 앞으로 아이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길지 모른다"며 "아이가 20살이 될 때까지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경우 이를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도 요구했다.

또 최근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아이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평생의료보험에 가입해 달라"는 요구도 추가했다.

●도 넘었다가 형사처벌도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머리카락이 나왔다며 제과점으로부터 금품을 받아낸 혐의(공갈)로 김 모 씨(25·여)를 불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서울 서초구 교대역 부근 제과점들을 돌아다니며 빵, 샌드위치 등을 산 뒤 다시 찾아가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우겨 환불을 받았으며 "추가 보상을 해 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해 다른 제품도 더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충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도 최근 모 회사 음료수에 이물질을 넣은 뒤 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아내려 한 박 모 씨(38·회사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달 31일 모 회사의 음료수에 10cm 길이의 플라스틱 끈을 넣은 뒤 회사 측에 보상금 1억원을 요구하며 모두 3차례 협박한 혐의다.

한 외식업체 관계자는 "사법당국에 적발되는 소비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라며 "소비자의 주장이 아무리 거짓이라 하더라고 일단 알려지게 되면 업체만 다치기 때문에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고 있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이물질 사고를 일으켜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은 식품 업계의 책임이라는 점을 대부분 업체들이 통감하고 있다"며 "업체들이 그 어느 때 보다 품질 관리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주부 오모(38·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사실 여부를 떠나 조그만 의혹만 있어도 구입하지 않게 된다"며 "이물질 의혹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는 가공식품을 구매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기업형 레스토랑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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