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중학생 논술 클리닉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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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제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담임선생님이 글 (가)와 같이 반응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런 담임선생님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 (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600자 내외로 논술해 보세요.

■ 학생글

이정은·경기 부천시 심원중학교 3학년

지금은 옛날의 직접민주주의와는 다르게 간접민주주의를 따른다. 즉,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다수결의 원칙으로 뽑힌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를 한다. 다수결의 원칙은 의견이 나누어진 토론거리나 최고의 방법을 위해 결정해야 할 일, 그리고 선거 등에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엄석대처럼 강압적으로 미리 손을 써놓은 다음에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새 담임선생님도 조회시간 때 학생들의 흘끗흘끗 눈치 보는 행동과 59 대 1의 득표율 결과의 원인을 눈치 챘던 것이었고, 그 원인에 화가 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을 보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엄석대의 행동을 알기에 선생님의 행동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순수한 다수결의 원칙이 아니다. 민무늬 새하얀 탈을 쓴 다수결이다. 엄석대는 텅 빈 머리로 맹목적인 목적만 생각하여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취한 방법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 선생님이야말로 학급반장 선거에 진정한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할 줄 알며, 엄석대 머리에 씌어 있는 민무늬 새하얀 탈을 벗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윤경·충남 금산군 금산여자중학교 1학년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가르쳐 주는 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앞으로의 인생의 길을 잡아 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교과서의 내용도 우리의 인생에 지식을 쌓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생활 가운데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일에는 항상 선생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보고 다수결의 원칙을 시행하는 일이 많다. 이런 것처럼 어릴 때부터 다수결의 원칙의 틀을 잡아주는 것이 선생님이신데 저 글의 선생님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이루어진 투표를 의심하여 다시 한 번 투표를 하게 한다. 손을 써서 급장이 되는 것은 나쁜 일이고 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투표를 하여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반 아이들의 선택을 꺾을 필요 따윈 없는 것 같다. 지금은 21세기이고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그만큼 다수결의 원칙은 더 많이 다양하게 쓰이게 될 시대이기도 하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자신의 의견이 분명하고 뚜렷해야 하며 그 의견이 맞지 않을 시에는 꼭 그 의견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저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내린 의견을 꺾으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의 이런 행동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꺾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고 다수결의 원칙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정말로 맞는 것이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하지만 우선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먼저이자 시작이다.

■ 총평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갖고 스스로 그 권력을 행사하며 책임지는 제도이자 정치적 사상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권, 인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칙 등을 기본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이런 기본 원리들은 민주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구심점이자 국가의 중심이 곧 국민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사전적 의미처럼 항상 옳고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국민이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와 의견의 차이로 어느 곳에서든 충돌과 반목이 일어날 수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통 다수결의 원칙을 기본 원리로 따른다. 그러나 이 역시도 소수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맞물려 항상 이견을 보이는 부분이다.

이번 논제는 민주주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가운데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간혹 문제시하지 않고 넘어가는 단적인 예를 들면서 이 문제를 각자 해결해 보도록 했다. 제시글에는 민주주의의 정의와 개론적 설명이 나와 있으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문제가 될 수 있는 한 장면을 제시했다.

이번 논제의 초점은 학급반장 선거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투표 결과가 나오자 담임선생님이 재투표를 하도록 한 것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데 있다. 즉 민주주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엄석대가 반장으로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을 두고 각자의 평가를 명확하게 내려야 하는 논제다.

학생들의 글을 살펴보니 다수의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제시해 주었다. 특히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앞으로 도래할 시대에 필요한 민주주의의 조건까지 제시하는 등 미래 전망까지 내놓아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논술문은 논제가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간과한 채 ‘다수결의 원칙’에 대해서만 논의를 전개한 글이 다수 보여 아쉬움으로 남았다. 제시된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논제에 접근하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뒷전에 두고 소설의 내용에 치중하는 경향도 보였다. 항상 논술문의 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논제의 조건에 맞게 중점적으로 다룰 부분이 무엇인지 판단한 후 접근해야 함을 잊지 말자.

이정은 학생의 글은 전체적인 전개가 탁월하다. 주장하는 목소리도 강력하게 잘 전달되었다. 무엇보다도 논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명확성과 논리성을 갖춘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논술문에서는 문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무늬 새하얀…’과 같은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이기에 명확성과 구체성을 갖추어야 할 논술문의 문장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간혹 글을 잘 쓰고자 할 때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논술문에 써서는 안 되는 표현법이다. 차라리 논자의 주장에 맞는 경구나 속담 등을 결말의 서두에서 인용하는 편이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강한 인상을 심어줄 것이다. 김윤경 학생의 글은 여러 학생들의 의견과 달리 선생님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제시했다. 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선생님의 지나친 개입은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자율성과 주체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민주주의에 관한 사항을 선생님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흐트러뜨리는 행위는 적절치 못함을 지적하여 큰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어법에 있어 ‘필요 따윈’이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해 개인적 글쓰기가 될 우려를 낳았다. 본론에서 ‘지금은 21세기이고 민주주의의 시대이다’라는 부분은 ‘21세기’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가 설명되고 있지 않아 의미의 모호함을 남겼다.

김재필 LC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 다음논제 써서 보내요

세계적인 스포츠나 문화행사 등을 통해 볼 때 우리는 ‘단일민족국가’라는 민족의식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족의식이 지나치게 팽배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글 (가), (나)에 드러난 각각의 민족의 의미를 중심으로 민족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각자 견해를 600자 내외로 논술해 보자.

■ 제시문

(가) 오늘날, 지구상에는 수많은 민족이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기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족이란, 같은 핏줄을 이어받고,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같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아오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집단을 의미한다. 민족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민족도 앞으로 역사의 전개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아무리 핏줄과 언어가 같고 문화와 역사를 함께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같은 운명을 지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임을 자각할 수 있는 민족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의미에서 민족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민족의식이란 민족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민족의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민족과 운명을 함께하려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족이란 핏줄, 언어, 문화, 역사와 같은 객관적 요소와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를 동시에 갖추었을 때에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중 2 도덕 154∼156쪽]

(나)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그 자신을 인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어떤 구세주적 민족주의자들도 기독교도들이 어느 시대에 기독교도만 모인 행성이 도래할 것이라고 꿈꾸는 것과 같이, 모든 인류의 성원이 그들의 민족에 동참하는 날이 올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이 정한 계층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어떤 보편적인 종교의 가장 신앙심 깊은 추종자라도 보편적인 종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사실과,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한계 사이에 이질동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인간의 역사 단계에서 민족들은 자유롭기를 꿈꾸며 만일 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면, 직접 받기를 꿈꾼다. 이 자유의 표식과 상징은 주권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黴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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