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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월 16일 0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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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논술부터는 변별력이 문제이고 따라서 A급 평가를 받아야 합격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A급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우수 답안은 한마디로 창의적 문제 해결을 보여 주는 답안이라고 했습니다. 논술에서 창의성이 무엇인지는 이미 살펴보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수 답안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창의적 문제해결을 보여 주는 답안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접근, 깊이 있는 접근, 다각적인 접근이라는 세 특성이 필요합니다. 이 중에서 채점자에게 가장 어필하는 특성은 역시 독창성입니다. 나름대로 새로운 주장을 하는데 그것이 말이 되고 타당성이 있을 때, 그것처럼 매력적인 글은 없으며 채점자도 한 수 배우기 때문입니다. 독창성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근본적인 사고를 통해 관점을 전환하여 창의적으로 접근하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생각대로 나름의 접근을 해야 합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독창성 자체를 의도한다고 독창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독창성은 남이 평가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이 자기가 쓴 글을 보면서 스스로 “야, 참 독창적이다”라고 한다면 어떤 상태라고 보아야 할까요? 농담 을 좀 섞어 말한다면 “심각한 치료를 요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거울에 얼굴을 비춰봅니다.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지만 대체로 무난하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남들이 보고는 “너 참 특이하게 생겼다”라고 평가하게 됩니다. 이 경우와 유사하게 독창성은 남이 평가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 이야기를 했을 따름인데 그것이 때에 따라서는 남들에게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독창성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같은 얘기를 A 집단은 독창적이라 평가하는데 B집단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독창성 자체를 글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을 최대한 말이 되도록 잘 정리하고 근거를 들어 주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평가를 받으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솔직함이 독창성의 어머니입니다. 의식적으로 튄다고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입 논술 답안도 튀는 것 자체가 목적인 글과, 자기 얘기를 했는데 그 결과 튀는 글은 확연하게 구분되기 마련입니다. 독창성을 의도하면 무리한 글이 나오게 됩니다.
독창성과 관련해서는 제 경험담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국어 영어 수학 본고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어시험 마지막에 작문 문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시험 칠 때 작문 주제로 ‘월매와 향단의 성격을 비교하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본고사 때에는 국어 문제지에 한자어가 나올 경우 한자로만 쓰거나 한자 병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 작문 문제에도 한자어인 ‘월매’와 ‘향단’에는 한자 병기로 ‘月梅’와 ‘香丹’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월매와 향단 하면 춘향전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은 춘향전에서의 월매와 향단, 두 사람의 성격을 비교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를 보는 순간 춘향전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안 했습니다. ‘月梅’는 ‘달빛 속에 피어난 매화’로 읽혀졌고, 이런 독해에 맞추다 보니 ‘香丹’도 ‘향내를 뿜어내는 모란’으로 읽혀졌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글을 썼습니다. 어찌 보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죠. 왜 그렇게 읽었을까 스스로 분석해 보면 시험 보기 전에 ‘설매(雪梅)’같은 시어가 나오는 옛 시조들을 집중적으로 읽다 보니 판독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열심히 썼습니다. 남녀를 대비시켜 달 속에 핀 매화는 우리 고전적 여인상의 풍모고, 향기로운 모란은 선비와 지사의 풍모라는 식으로 한참 너스레를 떤 뒤 흐뭇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빠져나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친구들이 하나같이 작문이 춘향전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그때 제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잠시 “왜 내 시험지만 다르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곧 상황을 판단한 후 요즘 식으로 말하면 끝없는 번지점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다가와서 위로한답시고 “재수(再修)는 필수잖아”라고 하면서 어깨를 두드리니 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합격했고, 나중에 본고사 성적을 확인할 기회가 있어서 보니 국어 성적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작문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독창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의도적으로 “모두 춘향전으로 쓸 것이니 나는 어떻게 튈 것인가?” 하고 잔꾀를 부린 결과는 아닙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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