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인이 中동포 대거 고용, 말통하는 한국 ‘타깃’ 삼아

  • 입력 2006년 12월 26일 02시 56분


중국 공안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사기를 일삼은 일당을 중국 광둥(廣東) 성에서 무더기로 검거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만인과 중국인이 중심인 이 사기 조직은 지난해 중순부터 한국의 국세청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 등을 사칭해 예금을 빼간 전화사기의 핵심 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전화사기를 벌인 하부 조직원이 한국 경찰에 검거된 적은 있지만 이 조직을 지휘하는 중국 현지의 핵심 조직원이 검거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발(發) 전화사기의 실체 드러나나=25일 한국 경찰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최근 광둥 성 등지에서 활동하는 전화사기의 핵심 조직원 100여 명을 검거해 이 중 56명을 구속했다.

중국 공안은 지난주 이런 사실을 주중 한국대사관에 알렸고 현재 한국 경찰과 협조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공안은 한국대사관에 “이 조직의 타깃은 한국인이며, 조직의 핵심 인물은 대만인”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검거된 조직원 가운데 대만인은 11명이다.

또 중국 공안은 이들이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6개 주요 범죄조직과 관련이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한국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중국에서 수사 중인 사항이라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수사 결과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언론에 공개할지도 중국 공안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이들 조직이 중국동포를 고용해 한국으로 사기전화를 걸게 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중국 현지의 동포 신문을 통해 범죄에 가담하지 말 것을 경고할 예정이다.

▽‘사칭’에서 ‘협박’으로=지금까지 중국발 국제전화 사기는 전국적으로 700여 건에 이르며 피해 금액도 40억 원에 이른다.

중국 내 조직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전화사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순부터. 처음에는 국세청을 사칭해 세금을 환급해 주겠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국세청은 지난해 11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올해 6월까지도 지방국세청마다 세금 환급과 관련해 매달 수백 건의 항의 및 문의전화가 이어졌다.

국세청이 납세자들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요청하자 사기조직은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지면서 지난달부터는 “아들을 납치했으니 돈을 송금하라”는 내용의 사기 협박전화가 홍수를 이뤘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납치 사기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한 사건을 취합한 결과 전국적으로 50건이 넘었다”고 말했다.

3, 4년 전 중국과 일본, 대만 등에서 크게 유행하던 전화사기의 범죄지역이 한국으로 바뀐 것은 한국에서는 외국인의 은행계좌 개설이 쉽고 현금자동인출기의 인출한도가 많으며, 중국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중국동포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의 은행은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여권만 있으면 계좌를 발급해 준다. 반면 영국 등 선진국에선 여권 외에도 소속 학교나 회사의 확인서와 본인 명의로 나온 수도요금 등 공과금 청구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중국의 현금인출기 한도는 30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선 1000만 원까지 인출할 수 있다.

경찰청은 조만간 중국발 전화사기의 유형과 피해 규모, 수사 결과 등을 종합해 발표할 예정이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국제전화 사기 범죄 유형과 사례
유형사칭 기관최근 사례
세금이나 보험금환급 사기국세청, 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관리공단 등12월 16일 피해자 김모(42) 씨, “건강보험금 환급해 주겠다”는 전화 받고 현금인출기 눌러 2000만 원 빠져나감.
수사기관 사칭 사기검찰, 경찰, 법원,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등12월 20일 방모(48) 씨, “누군가 당신 신용카드를 훔쳐갔다. 계좌 관리를 위해 현금인출기에 가서 번호를 입력하라”는 전화 받고 실행했다가 1000만 원 빠져나감.
신용카드사사칭 사기신용카드사12월 5일 이모(39) 씨, “신용카드회사다. 노트북 구입한 적 없느냐? 신용카드가 도용된 것 같다. 환급해 주겠다”고 속여 190만 원 빼감.
납치 협박

12월 14일 정모(45) 씨, “아들을 납치했으니 500만 원 입금하라”는 전화 받고 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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