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 "고마움 모르는 北 지원 전면 재고해야 한다"

  • 입력 2006년 9월 18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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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군인들에게 과자부스러기를 던져주고 희롱이나 하면 되갔소. 동무래 무신 목적으로 왔시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17일 금강산에서 북한 초병에게 아이스크림과 땅콩을 건네려다 억류돼 북한 측 장교에게 추궁당한 내용이다.

차 의원은 이 사건으로 북한 측의 조사를 받았고 때문에 금강산에서 출발하려던 남측 관광객 1000명은 1시간여 가량 발이 묶였다.

그는 18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의 전말과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으로서 북한 측 규정을 어긴 대가를 치룬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어제 일들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북한에 대한 우리 남한의 지원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의원은 지난 16일 새천년생명운동의 연탄보일러 공장 기공식 행사 참석차 1박2일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다음은 차명진 의원의 보도자료 전문

남한 국회의원이 북한 군인에 의해 2시간동안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차명진(한나라당 부천소사)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저는 어제 북한측 군인 10여명에 의해 금강산에서 2시간동안 억류되었습니다.북한을 방문하는 사람으로서 북한측의 규정을 어긴 댓가를 치룬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 일들은 저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로 말미암아 영문도 모른 채 북측에 40여 분간 억류되었던 금강산 관광객들께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쳐 드린 점도 마음에 걸리는 일입니다. 저 자신 부주의했던 일이 낯 뜨겁기도 하지만 국민 여러분과 기자님들께 어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보고 드리고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저는 의 자문위원 자격으로 9월 16일 새벽 0시에 단체관광버스를 타고 부천을 출발했습니다. 새천년생명운동은 북한에 연탄아궁이를 공급하는 운동을 하는 순수 민간단체입니다. 북한은 지금 연료가 없어서 나무란 나무는 다 잘라서 땔감으로 사용한 탓에 천지사방이 허허벌판이 되어 있습니다.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마저 황량해지는 것을 걱정한 남한의 뜻있는 사람들이 북한 측에 연탄아궁이 지원 사업을 하기 위해서 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한나라당의 의원님들도 이 사업이 맹목적 퍼주기와는 다르다고 해서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김문수, 배일도, 김애실, 최병국, 전여옥 의원님들도 1년 전에 저와 같은 코스로 북한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부천에서 출발한 버스는 5시간 만에 강원도 화진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새천년생명운동의 다른 지역 회원들과 합류해 보니 총 인원이 60여명이 되었습니다. 함께 인사를 나누고 같은 시각에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 9백여 명과 함께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첫 일정으로 오전 10시에 북한 금강산 자락의 마을인 온정리에서 아궁이공장 완공식 행사를 하였습니다. 뜻하지 않던 축사를 부탁받은 저는, ‘등따시고 배부른 것은 어느 나라나 백성의 염원이고 위정자의 책무이다, 그러나 특별한 역사적 정치적 이유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번에 새천년생명운동본부에서 순수민간차원에서 북측에 연탄아궁이보급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참으로 뜻 깊은 일이며 북측 전역에 따듯한 아궁이가 퍼지기를 기대한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끝나고 나서 참석자들과 북한 사람들의 표정이 별로 안 좋길래 내가 이 분들 기분을 상하게 했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최근 전시작통권 환수문제 등에서 일관된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한나라당을 달가와 하지 않는 분위기로 생각됩니다.

그 이후 저는 북한 측이 저를 계속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온정리의 아궁이 시범마을을 갔는데 제 옆에 앉은 동료가 사진금지구역에서 사진을 찍으려다가 미처 찍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던 사람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어디에서 나온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을 하지 않고 제 사진기를 뺏으려 하기에 제가 직접 모니터를 조작하면서 마을의 전경이 찍히지 않았음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남한에서는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에서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남의 물건을 수시로 빼앗고 감시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온 남한 측 사람에게도 이러니 북한측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협력이고 관광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저녁에 금강산 모란각에서 북한측이 주최하는 만찬이 있었습니다. 저희 인솔자가 저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북한측이 저를 꺼려하니 메인테이블에 모시기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럴 거라면 뭐 하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가 국회의원이라고 폼잡기보다는 새천년생명운동의 일원으로 왔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그냥 말석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도중에 바람을 쐬기 위해서 밖에 나왔더니 낮에 저의 사진기를 빼앗으려 했던 사람이 밖에 지켜 서 있다가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곤 하는 말이 “당신 딱 찍혔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뭐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더니, “군관동무가 당신을 딱 찍었단 말이야.”라고 다시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 옆에 있던 동료가 사진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도 봤잖아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화합의 자리니끼니 잘하라우.”라고 훈시를 했습니다. 저보다 나이도 적어 보이는 사람이 반말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거니와 낮에 분명히 자기도 문제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런 식으로 나오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제가 기가 찬 듯이 웃자 그 사람은 뒤를 돌아서 가버렸습니다. 그날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아 숙소인 금강산호텔에서 잠자리에 일찍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금강산에 오르는데 제가 느낌이 이상해서 신분증을 가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곳곳에서 북한 사람들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금강산 망양대 꼭대기에 서 있던 사람은 저에게 다가와서 “선생은 새천년생명운동 소속이 맞습네까?”하고 물었습니다. 중턱에서 좌판을 펴놓고 음식을 팔던 처녀는 가시오가피액즙이 비싸다는 저에게 “국회의원이 기깐 돈도 없습네까?”하고 물어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신분증을 가리고 있었는데도 산중턱에서 일하는 사람이 날 어떻게 알까 궁금함을 넘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금강산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금강산온천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2시에 들어가서 3시에 나와 집결지까지 저를 포함한 동료 4명이 숲을 따라 난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하나씩 입에 물고 도로 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북한군 2명이 서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도로에서 10m 떨어져서 숲속에 있는 초소에 서 있던 초병들이 근무가 길거리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 군인들은 손에 빨간 기를 들고 호루라기를 차고 있었습니다. 안내인에 의하면 그들의 임무는 금강산 관광객들이 혹시 자신들이나 사진촬영금지구역에서 사진촬영하면 빨간 깃발을 흔들고 호루라기를 불어댄다고 합니다. 그러면 높은 사람이 와서 관광객의 사진기를 압수한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없으면 이들도 철수한다고 합니다.

여하튼 우리는 길가에 서있는 군인에게 아이스크림을 권했습니다. 제가 대표가 되어 “아이스크림 드실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린 근무 중에 기딴 거 안먹습니다.” 라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하도 퉁명스럽게 답하길래 “아, 그래요?”하고 머쓱해져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걸었습니다. 한 10m쯤 걸었는데 뒤에서 그 군인이 우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거기 서시오.”라고 명령조로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당황하여 “안 드신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가는데 왜 이럽니까?”라고 했더니 “근무 중인 군인에게 음식을 권했으므로 억류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호루라기를 쎄게 불었습니다.

1분도 안돼서 초소장이 달려 왔습니다. 다음에 수레가 함께 붙어 있는 오토바이를 탄 군인도 왔습니다. 그리고 현대 갤로퍼를 탄 기관원 같은 사람이 왔습니다. 우리 일행은 한 시간 동안 억류되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벌 받는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날리며 사라졌습니다. 우리 일행은 1시간 동안 10여명의 군인들에게 둘러싸여서 똑바로 서 있으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성가신 압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1시간 쯤 되니까 주둔부대의 최고위층쯤 되어 보이는 군인이 짚차를 타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심문하듯 다그쳤습니다.“동무래 무신 목적으로 왔시오?”“공화국 군인들에게 과자부스러기를 던져 주고 희롱이나 하면 되갔소?”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했습니다. ‘나는 새천년생명운동의 자문위원으로 북한의 아궁이 개량사업을 지원하러 왔다. 내가 선의로 그랬지만 그것이 북측의 규정에 어긋났다면 미안하다, 그리고 나는 정중하게 음식을 권했지 부스러기를 던져주고 희롱하지 않았다, 마침 그 군인들이 길거리로 나와 있길래 지나치면서 권한 것이다. 초소까지 찾아 간 것도 아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저의 대답이 적절했는지 그 장교는 사실관계는 더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저의 자세를 문제 삼았습니다.

“잘못해 놓고 기딴 식으로 뒷짐이나 지고 서 있으며 되갔소? 바로 서지 못하갔소?”

저는 ‘내가 당신들 규정을 어긴 것은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내가 당신 앞에서 차렷 자세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다.’이렇게 반문했습니다.

그랬더니 화가난 장교는 “사과하는 자세가 안 됐구만, 사과문 쓰시오.”라고 다그쳤습니다.저는 ‘못쓴다, 당신들은 이미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2시간동안 억류했다, 당신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장교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져서 짚차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얼마 후 현대아산의 총소장이라는 분이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관광객 구백여명이 집에 못가고 억류되어 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철책이 닫혀서 집에 못가게 된다, 사과문은 쓰지 말고 그냥 선의로 한 것이 규정을 어기게 되어 유감이라는 글만 남겨주면 자기들이 가서 중재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갈등이 생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북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를 껄끄럽게 생각했구나, 어쩌면 지금 상황도 그들이 나를 감시하다가 의도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양보하지 말고 그들의 태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나 때문에 구백여명이 억류되어 있다니 미안하다, 오늘 이 분 모두가 집에 못 갈지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방북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내인이 해고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저는 선의로 북측 군인에게 음식을 권했으나 북측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므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이 글을 받아 든 현대아산의 총소장이 어디론가 가더니 잠시 후 지금가지 온 사람 중에서 제일 높은 장교가 와서 저에게 “선생도 통일사업의 일꾼인 것 같은데 기러지 맙시다.” 하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악수를 한 후 일행과 함께 그 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북측 검역소에 갔더니 관광객들의 차가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관광객들 사이에는 자초지종은 없고 저로 인해 차가 붙잡혀 있다는 소문과 불만이 팽배했습니다. 관광객들께 미안했습니다. 동시에 저를 빌미로 관광객들을 몽땅 인질로 삼은 북한측의 처사에 정말 분노를 느꼈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서 새천년생명운동의 관계자가 들려주었는데 북한측은 처음부터 저의 방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안가면 이번 방북을 취소하겠다는 새천년생명운동 관계자의 고집 탓에 저의 방북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방북기간 내내 그들은 저를 감시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뿐 만이 아닙니다. 저는 곳곳에서 새천년생명운동의 관계자가 북한 측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저를 말석에 앉히는 만찬자리까지 용납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새천년생명운동 관계자의 그런 성의를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찬 자리에서 북한의 기관원인 듯한 사람이 남측 인사에게 하는 말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북은 군사, 남은 경제가 발달했으니끼니 서로 잘 협력합시다.” 그들은 우리 남한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움이 아니라 댓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댓가입니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도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댓가를 지불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성가시게 여기고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관광객들을 감시와 억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우리 남한의 지원을 전면 재고해야 합니다.

구민회 동아닷컴 기자 dan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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