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서울 공릉초등학교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서울 공릉초등학교의 방과 후 학교인 햇살둥지는 맞벌이 등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보금자리다. 12일 1학년생들이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강병기 기자
서울 공릉초등학교의 방과 후 학교인 햇살둥지는 맞벌이 등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보금자리다. 12일 1학년생들이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강병기 기자
《“선생님, 조금만 더 있다가 집에 가면 안 돼요?” 12일 오후 6시경 서울 노원구 공릉동 공릉초등학교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입으로 물감을 불어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한창 빠져 있던 2학년생 이재영 군이 할머니 이영자(61) 씨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햇살둥지’란 이름이 붙여진 ‘방과 후 학교’에 재미를 붙인 재영이가 집에 가기 싫다고 할머니에게 떼를 썼다. 이 씨는 “가끔 아들 집에 가는 길에 손자 녀석을 데리러 학교에 오는데 허탕 치기 일쑤”라며 웃었다.》

재영이의 부모는 맞벌이를 한다. 둘 다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학교가 끝날 때쯤이면 아들 걱정이 앞선다. 할머니 이 씨도 외둥이 손자 재영이가 혼자 노는 것이 항상 안쓰럽다. ‘햇살둥지’가 재영이를 보듬어 주면서 고민은 해결됐다. 이 씨는 “손자가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선생님이 직접 숙제지도까지 해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릉초교는 올 3월 서울시교육청의 방과 후 학교 시범교로 선정되면서 1, 2학년생을 한데 모아 한 반을 운영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금은 1, 2학년생을 나눠 한 반에 20명씩을 돌보고 있다. 햇살둥지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이 대기하고 있다.

햇살둥지는 햇볕이 잘 드는 2층 교실 11개에 자리 잡았다. 영어놀이실, 미술실, 상담실 등 용도별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교실은 아이들이 마음껏 동심의 날개를 펴는 놀이터나 마찬가지다.

햇살둥지는 교과학습, 특기적성, 보육, 특별체험학습, 유치원 연계학습 등 다섯 가지 프로그램을 아이의 발달과정에 맞춰 짜임새 있게 운영하고 있다. 많은 교사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스포츠댄스, 컴퓨터, 논술, 동요 등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일반 학원 한 달 수강료 정도인 6만8000원이면 이 모든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다.

이 학교 백민(62) 교장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무료 특기적성 교육에 나선 덕분에 햇살둥지가 더욱 밝아지고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각자 적성에 맞는 특기를 찾아 가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공릉초교는 저소득층과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햇살둥지는 더욱 인기다. 2학년생 김민주 양은 “집에서는 혼자 컴퓨터만 했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뭐든지 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해맑게 웃었다.

햇살둥지엔 ‘엄마 선생님’ 또는 ‘아빠 선생님’이라고 교사를 부르는 아이들이 있다. 공릉초교 교사들이 결손가정 학생과 결연해 이들을 보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공선희(56·여) 교무부장은 “학원에 보낼 여유가 없는 가정의 아이나 부모가 가출한 가정의 아이는 외톨이가 되기 쉬워 세심하게 돌봐줄 손길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아이들과 결연한 교사 13명은 자연스레 엄마 아빠가 됐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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