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례와 다른 지법 판결

  • 입력 2006년 6월 16일 03시 05분


코멘트
일선 법원 판사가 “부동산실명제의 제도적 정착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면이 없는지 살펴볼 시점”이라며 강제집행이나 세금을 피할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비판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단독 이종광 판사는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외삼촌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넘겼던 박모(54) 씨가 “명의신탁한 부동산 소유권을 돌려 달라”며 외삼촌 정모(64) 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9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 판사는 “불법적인 의도로 소유권을 이전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명의 회복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는 강제집행이나 세금 등을 피하기 위해 명의신탁을 한 사람이 그 재산의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인정해 왔다. 그러한 목적의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제법에 어긋난 계약이어서 애초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불법적인 명의신탁에 따른 형사 처벌과 벌금 등을 감수하면서 중요한 부동산을 빼돌리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이 판사는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대법원은 명의신탁의 유효성에만 집착해 신탁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타인의 이름으로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세금을 포탈한 뒤 그 돈으로 투기를 하다가 빚을 지면 재산을 타인 명의로 빼돌려 채권자가 아무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은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수천억 원의 형사추징금을 선고받았던 전직 대통령이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어 추징금을 납부하지 못한다는데 그의 자식들은 수억 원의 부동산을 갖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불법 목적의 명의신탁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