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입맛 안맞는다고 역사의 죄인처럼 몰아서야”

  • 입력 2006년 6월 1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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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 퇴임하는 강신욱 대법관은 최근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둘러싼 논란과 판결 경시 풍조 등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그는 후배 판검사들에게 “출세에 대한 욕망을 접으라”고 충고했다. 안철민 기자
다음 달에 퇴임하는 강신욱 대법관은 최근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둘러싼 논란과 판결 경시 풍조 등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그는 후배 판검사들에게 “출세에 대한 욕망을 접으라”고 충고했다. 안철민 기자
《대법관으로 재임한 지난 6년간 침묵을 ‘강요’받았기 때문일까. 강신욱 대법관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10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해 판결로는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를 했다. 최근 대법관 후보 제청부터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 대법관 생활을 때론 담담한 어조로, 때론 다소 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30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치밀하고 소신 있는 일 처리로 검찰 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검찰 출신으로는 처음 수석대법관이 됐다. 평소 과묵한 그였지만 인터뷰는 예정했던 1시간을 훨씬 넘겨 2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6년간의 고뇌가 배어 있는 듯했다. 그는 “다시 대법관을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새 대법관 후보 5명이 임명 제청됐다. 6년 전 생각이 날 법한데….

“나는 임명 제청 하루 전날 대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임명 제청되기 전 후보가 거론되고 일부 단체가 명단도 공개한다. 더 많은 검증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어떤 부작용을 의미하나.

“대체로 자기 단체의 입맛이나 이념에 맞는 사람을 추천한다. 일부 단체가 추천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법관이 이익단체나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며 재판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금도 그런 것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 시민단체가 명단 공개를 자제해야 한다. 사법부 장래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법원 안팎에서 과열 양상이 빚어지자 대법원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대목에서 그의 얼굴이 다소 상기됐다.

―대법관의 하루 일과가 궁금한데….

“공무원이니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10분경 퇴근한다. 직원들 때문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없어 다 보지 못한 서류는 집에 갖고 간다. 처음엔 서류 보따리를 들고 가는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점심은 대법원 식당에서 다른 대법관들과 함께 해결한다.”

―재임 기간에 처리한 사건이 얼마나 되나.

“민사, 형사, 특별 사건 등 본안 사건만 1년에 평균 1500건 된다. 6년간 산술적으로 9000건 정도 되는 셈이다. 본안 사건 외에도 비교적 가벼운 결정 사건도 그 정도 된다. 다 합치면 2만 건 정도 된다.”

강 대법관은 24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30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한 뒤 2000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6년간 서류에 파묻혀 사느라 이가 빠지고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3번이나 바꿔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법원 판결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

“부장판사 등 3명의 전속연구관이 먼저 기록을 검토한다. 추가 검토가 필요하면 공동연구관 30여 명이 분야별로 나눠 다시 본다. 연구관 보고서는 사건에 따라 100쪽이 넘기도 한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어떤 대법관은 “임명된 첫날만 좋고 나머지 6년 내내 고통스러웠다”고 하던데….

“나는 첫날도 어려웠다. 두려움이 앞섰고 책임감 때문에 좋은 줄도 몰랐다. 초기부터 스트레스 때문에 이가 흔들려 치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할 것이다.”

―강 대법관이 맡았던 연쇄살인범 유영철 씨의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얼마 전 잡혔는데….

“진범이 잡혔다고 해 깜짝 놀랐다. 다행히 피고인이 부인했던 이문동 사건에 대해 1년 전 무죄를 확정했기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경송 대법관은 1999년 퇴임하면서 “그릇된 판단 때문에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말했는데 혹시 그런 기억은 없나.

“‘혹시 억울해 하는 사람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늘 한다. 오직 ‘신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했다.”

―대법관은 어떤 자리인가.

“법관은 한 맺힌 당사자들 얘기를 다 들어줘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대법관은 더더욱 그런 자리다.”

그는 ‘다시 대법관을 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안 한다”면서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검사 생활을 오래 했는데….

“검사는 범죄를 추적하고 범인을 잡는 것이 사법적인 정의라고 생각한다. 법관이 되니까 중립적인 견해를 지니게 돼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 검사도 법률가인 만큼 최선을 다해도 의심스러울 때는 기소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법원 판결이 권위를 잃었다는 지적과 국민과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가 교차한다.

“우리 사회가 30여 년간 정치 경제적 성장을 거치면서 인권의식도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분열 양상이 심화됐다. 특정 단체가 자신의 입맛대로 판결하지 않으면 마치 (법관이) 역사의 죄인인 것처럼 단죄하려 든다. 지난번 새만금 사건 재판 때도 한쪽에서는 만세를 부르고, 다른 한쪽은 ‘당신들 역사의 죄인 될 줄 알라’고 하던데 이건 아니다.”

―현 정부는 사법부의 인적 구성 변화를 시도했다.

“기수 파괴로 대법관이 된 분들은 훌륭한 분들이다. 그렇지만 법조라는 조직은 사법시험이라는 뿌리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긴다. 그걸 무시하면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 선배 중에 훌륭한 사람이 없다면 아래 기수를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떠드니까 밑에서 올려야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대법관 선정 때 이념적 성향을 중시하는 것 같다.

“외부에서 나를 보수라고 하기에 대법관 13명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관찰해 봤다. 지난해 여성의 종중(宗中) 회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 때 대법관 의견이 7 대 6으로 갈렸다. 7명은 무조건 여성도 종중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나도 거기에 한 표를 던졌다. 나머지 6명은 원하는 여성만 허용하자는 입장이었다. 어떤 게 진보이고, 어떤 게 보수인가.”

―일부 시민단체는 대법원이 아직도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처럼 사형제도나 동성애 문제를 놓고 분류하면 몰라도 간통제 폐지나 국가보안법 같은 걸로 분류하는 건 우습다. 보수를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면 대법원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요즘 상당수 법관이 여론의 압박 때문에 고심하는 것 같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롭게 재판하면 최상이다. 그렇게 하도록 헌법이 명령하고 있다. 요즘 일부 단체는 판결 하나 나오면 법관을 디딤돌과 걸림돌로 가른다고 하는데 곤란하다.”

―사법개혁 방향에 대한 견해는….

“사법개혁의 요체는 법조인 양성이다. 로스쿨 도입에 찬성한다. 하지만 1000명이든, 2000명이든 이들을 소화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보따리 들고 다니면서 변호사 한다면 국가적으로 얼마나 낭비인가.”

퇴임 후 계획을 묻자 강 대법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 대법관은 “우선 쉬고 싶다”며 “36년의 공직 생활 동안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큰 짐을 지고 험한 산을 오른 뒤 막 짐을 벗으려는 기분”이라고 했다. 후배 판검사들에게는 “이미 선택받은 사람들인 만큼 출세에 대한 욕망을 접으라”는 말을 남겼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대법관들도 월드컵 얘기를 하는지 물었다.

강 대법관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스페인과의 8강전을 광주에서 지켜봤다”며 “나도 모르게 함성이 나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는 “설령 경기에 진다고 해도 모두들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강신욱 대법관▼

△1944년 4월 경북 봉화 출생, 62세 △1967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8년 사법시험(9회) 합격 △1970년 군 법무관 임관 △1973년 서울지검 영등포지청 검사 △1983∼1993년 대검찰청 형사2과장, 중앙수사부 2·4과장, 서울지검 특수3·2부장, 강력부장, 형사1부장-우지(牛脂)라면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수사 △1995년 청주지검장 △1997년 법무부 법무실장-외환위기 직후 상법, 회사정리법 등 경제관련 법안 정비작업 주도,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피해 신속 구제를 위한 국가송무제도 개선 △1999년 서울고검장 △2000년∼ 대법관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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