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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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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며, 나 죽기 전에 가족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어.”
1935년 19세의 나이로 순사에게 끌려 온 김기현(90) 할아버지는 올해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과 함께 90세를 맞았다.
그는 “일본인 원장 동상에 묻은 까마귀 똥을 치우지 않는다고 곤봉으로 까무러칠 정도로 맞고 감금실에 끌려갔다”고 과거의 아픔을 떠올렸다. 광복 후 월북한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흘러간 70년 세월은 주름 사이에 회한의 흔적을 새겼다.
최귀순(88) 할머니는 1946년에 입소해 60년 동안 소록도에 살면서 딱 한 번 육지에 발을 디뎠다.
최 할머니는 “아버지의 환갑을 맞아 고향집에 가던 날 버스를 안 태워줘 순천까지 울며 걸어갔다”고 말했다.
“살아서 다시 볼 수 있겠느냐”며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가 곧 세상을 떠난 후 최 할머니는 마음의 문을 닫고 육지를 머리에서 지웠다.
▽마음을 여는 환자들=섬을 찾은 12일 곳곳에는 15일 열리는 ‘개원 제90주년 및 제3회 전국 한센가족의 날 기념식’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국 88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한센인들과 가족 5000여 명이 참가하는 행사를 앞두고 섬에는 활기가 넘쳤다. 소록도에 변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3, 4년 전부터.
2003년 섬에는 인터넷 전용선이 들어왔다. 지금은 상당수 주민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손남진(66) 할아버지는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 뉴스를 보고 뭍에 있는 가족들에게 e메일을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주민들의 육지 외출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실태와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해 섬을 찾으면서 언론의 관심도 늘었다.
13세 때부터 70년 동안 섬에서 생활한 박인숙(83) 할머니는 “인터뷰 요청을 자주 받아 녹음기를 사야 할 판”이라며 웃었다.
▽관광지로 탈바꿈=지난해 소록도를 방문한 사람은 모두 18만여 명. 2000년 15만8000여 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고흥군 측은 내년에 소록도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가 완공되면 더 많은 이들이 소록도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자가 소록도를 찾은 12일 하루 동안에도 100여 명의 관광객들이 감금실, 검시실 등을 둘러보고 환자 6000여 명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중앙공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관광객들이 정착촌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중앙공원이나 소록도항에서는 환자들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서로 인사를 나눴다.
고흥에서 자랐지만 소록도에 처음 와 본다는 장문자(69·여) 씨는 “어렸을 때 듣던 괴소문 때문에 망설였지만 와서 보니 자연도 아름답고 배울 것도 많다”며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106세로 소록도 내 최고령인 정활수 할아버지는 “소록도가 한의 흔적을 씻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의 김중원(金重源) 원장은 “노인성 질환에 대처할 수 있는 설비를 확충하고 호스피스제를 도입할 것”이라며 “한센인들과 다른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가진 편견을 없앨 수 있도록 소록도를 더 개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흥=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소록도를 거쳐간 사람들
국립소록도병원은 한센병 환자들의 한과 함께 섬을 거쳐 간 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1921년 2대 원장으로 부임한 하나이 젠기치(花井善吉) 원장은 추위에 떠는 환자들에게 한국식 솜옷을 입게 했다. 가족 면회와 신앙생활을 보장했으며 3년제 학교를 세우는 등 환자들을 위해 힘썼다.
하지만 환자들이 공덕비를 세우려고 하자 “그런 짓을 하면 그만두겠다”며 강하게 만류했다. 1928년 그가 순직한 후 환자들은 돈을 모아 창덕비를 세웠다.
광복 후 친일 청산 움직임으로 창덕비가 철거 위험에 처하자 환자들은 비석을 땅에 묻었다가 1961년에 파내 다시 세웠다.
반면 수호 마사토(周防正李) 4대 원장은 환자들을 동원해 중앙공원, 신사 등을 건립했으며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매달 20일에 참배를 강요했다.
또 간호장 사토를 심복으로 부리며 환자들을 학대하다 1942년 원생 이춘상(李春相)에게 살해됐으며 동상은 이듬해 전쟁물자로 징발됐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실존 인물인 조창원(趙昌源) 원장은 1961년 부임해 축구팀을 만들고 직원과 환자를 가르던 철조망을 철거하는 등 환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했다. 또 정착촌을 짓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환자들의 꿈을 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추진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조 원장은 3년 만에 물러났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는 1960년대 초부터 40여 년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하다 지난해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다”는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가 잔잔한 감동을 줬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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