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6년 5월 15일 03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국내 최연소 법대 교수 박용철이 본 ‘한국의 공판중심주의 현주소’
“피고인의 차 안에서 발견된 테이프는 이삿짐을 정리하기 위해 갖고 다니던 것이죠?”(변호인)
“네.”(피고인)
“피고인이 차 안에 뒀던 칼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죠?”(변호인)
“네.”(피고인)
강도를 모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30대 남성이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은 10분 만에 끝났다. 피고인은 재판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국선변호인의 신문에 “네”라고만 답변했다. 검사는 피고인이 죄를 인정해서인지 변호인 신문 도중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공판중심주의를 점검하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법정을 찾았던 박 교수는 재판이 끝난 뒤 “미국에서 변호인이 이런 방식으로 피고인을 신문했다면 검사는 ‘변호인이 유도신문을 하고 있다’며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가 전하는 미국 법정의 특징은 ‘피고인들이 뻔뻔하다’는 점. 미국 연방증거법 611조는 ‘Yes 또는 No’로만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유도신문으로 정의하면서 부적절한 신문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법정에 선 피고인은 죄인으로 낙인찍힌 채 재판에서 소외된 것처럼 보인다”며 “공판중심주의를 시행한다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런 요소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학생들은 박 교수에게 “피고인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박 교수는 “‘뻔뻔한 피고인’은 한국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 듯한 측면이 있지만 사법정의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국 법정에도 법익(法益)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적극 변호하는 피고인과 변호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 김상준(金尙遵) 부장판사는 “재판은 과거 사실, 현장(reality)의 재현”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2월까지 법원행정처 송무국장으로 공판중심주의 제도를 연구했다.
김 부장판사는 “한국의 법정 풍경이 미국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도 “재판의 효율성과 법원 검찰의 편의가 우선되는 현재의 법정에서는 진실에 접근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공판중심주의 속속 도입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02개 전체 민사재판부 중 45개 재판부를 구술변론 재판부로 지정하고 법원 내 ‘구술변론활성화연구회’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9월부터는 전 민사재판부로 구술변론을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노동·산업재해 등 5개 재판부를 구술변론 시범재판부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사건 당사자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 안으로 모든 재판부가 구술변론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형사재판에서는 1심 법원을 중심으로 공판중심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와 형사1단독 재판부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검찰도 공판중심주의에 소극적이었다는 일부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 공판중심주의 형사재판의 기본 절차인 ‘증거 분리 제출’ 제도를 지난달부터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