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매 살해 용의자 검거…“세상이 미웠다” 무차별 살인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3분


코멘트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세 자매 피습사건 등 8차례에 걸쳐 살인과 강도를 한 용의자 정모 씨(가운데)가 24일 현장 확인을 마친 뒤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들어가고 있다. 김재명 기자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세 자매 피습사건 등 8차례에 걸쳐 살인과 강도를 한 용의자 정모 씨(가운데)가 24일 현장 확인을 마친 뒤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들어가고 있다. 김재명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발생한 ‘세 자매 피습사건’을 포함해 8차례에 걸쳐 5명을 살해하고 8명을 중상에 빠뜨린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붙잡혔다.

용의자 정모(37·무직) 씨는 “2004년 발생한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 중 3건의 범행도 저질렀다”고 자백함에 따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정 씨가 이 사건의 진범일 것으로 보고 24일 구속 수사 중이다.

전과 5범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온 정 씨는 단돈 몇 만 원을 빼앗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완전범죄를 위해 목격자를 모두 살해하려 했으며 자신을 기다리는 취재진에 혀를 내미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柳永哲)을 닮았다.

▽잔인한 범행=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2004년 2월 이후 최근까지 서울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영등포구 등 서남부지역 일대를 배회하다 문이 열려 있는 집에 들어가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정 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4시 반경 관악구 봉천8동 김모(25·여) 씨의 단독주택 2층에 침입해 잠을 자던 김 씨 자매 3명을 둔기로 때려 1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중태에 빠뜨린 뒤 이불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중태에 빠진 김 씨의 동생 중 한 명은 며칠 뒤 숨졌다.

정 씨는 또 지난해 4월 18일 금천구 시흥동의 모 빌라에 들어가 황모(47·여) 씨와 황 씨의 아들 이모(13) 군을 둔기로 때리고 금품을 털었으며 같은 해 10월 9일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에서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30대 여성 2명을 둔기로 때려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정 씨는 이달 22일 오전 4시 5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의 김모(24) 씨 집에 들어가 김 씨를 둔기로 때리고 금품을 훔치려다 김 씨의 아버지(46)와 김 씨에게 붙잡혔다.

경찰은 정 씨가 소지한 교통카드를 조회해 이동 지역을 알아내고 추궁한 결과 “주로 지하철 2호선으로 이동하면서 잇따라 강도 사건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 씨에 의해 두 딸을 잃은 박모(48·여) 씨는 셋째 딸이 입원해 있는 동작구 중앙대병원에서 검거 소식을 전해 듣고 “졸지에 두 딸을 잃고 남편까지 범인으로 몰렸다”면서 “지금까지 경찰은 도대체 뭘 했느냐”며 오열했다.

▽‘묻지마 범행’=정 씨는 경찰에서 “직장도 못 구하고 결혼도 못해 화가 나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씨의 범행 대상은 정작 서울 서남부지역 서민 주택가의 여성과 장애인들이었다.

정 씨는 고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9년 특수강도죄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으며 절도, 야간주거침입절도, 강제 추행죄 등으로 다시 붙잡혀 실형을 살았다.

2003년 3월 출소한 정 씨는 현재 인천에서 어머니와 누나, 동생 등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거주지인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 범행 장소를 골랐으며,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강남 지역에서 범행하면 붙잡히기 쉽다고 보고 인천과 가까운 서남부지역에서 범행했다.

정 씨는 또 완전범죄를 위해 목격자는 모두 살해하려 했고 옷가지나 이불을 태워 범행 흔적을 없애려 하는 등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경기 부천시 등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경기지방경찰청과 공조 수사를 벌이는 한편 정 씨가 범행 당시 콘돔을 소지하고 있었고 성폭행 관련 기사 7건을 스크랩해 놓았던 점으로 미뤄 정 씨가 성폭행 등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피해자가 잡은 범인, 호송중 놓쳐…시민 신고받고 겨우 다시 붙잡아

경찰이 시민 덕분에 잡은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용의자 정모 씨를 호송과정에서 놓쳤으나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붙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22일 오전 4시 5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의 김모(24) 씨 지하방에 침입했다가 옆방에서 달려온 김 씨의 아버지와 친구에게 붙잡혔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3차례나 둔기에 뒷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등 중상을 입었다.

김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신풍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정 씨를 넘겨받았다. 그러나 정 씨는 경찰관이 자신을 순찰차에 태우기 직전인 이날 오전 5시 30분경 수갑을 찬 채 인근 주택가 골목길 쪽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160여 명을 동원했으나 정 씨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날 오전 7시 45분경 한 주민이 “옥상에 누가 숨어 있다”고 고함을 질렀다. 경찰이 이 소리를 듣고 쫓아가 2시간 15분이 지난 뒤에야 정 씨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2004년 1월에도 연쇄살인범 유영철 씨를 절도 혐의로 붙잡아 조사했으나 혐의를 밝혀내지 못해 풀어주는 바람에 추가 범행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