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창진]修能듣기평가 ‘우리말 발음’ 제대로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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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말을 사랑한다면 바르고 아름답게 써야 마땅하다. 그래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철자법의 규범으로서 ‘한글맞춤법’을, 발음의 규범으로서 ‘표준발음법’을 만들었다. 우리말을 사랑한다면 국민 누구나 이 규범들을 잘 지켜야 한다. 특히 규범을 만든 교육부가 모범을 보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교육부가 주관해 시행한 수능시험 듣기평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틀린 발음이 많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우리말 발음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지난해 수능시험 듣기평가가 엉터리 발음으로 출제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그 사실을 수능시험을 주관하는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각각 알려서 고치도록 요구한 바 있다. 그런데도 올해 시험에서는 지난해 듣기평가에서 틀린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낱말이 틀렸다. 이는 현재 나와 있는 ‘발음사전’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다.

듣기평가 방송에서 문제가 되는 발음은 대부분 길게 소리 내야 하는 발음을 짧게 소리 낸 것들이다. 교육부가 1988년에 만든 표준발음법에는 “모음의 장단을 구별하여 발음하되 단어의 첫 음절에서만 긴소리가 나타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음의 장단음 구별은 우리말의 오랜 전통에 바탕을 둔 것으로 동철이음(同綴異音)어의 의미 구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부가 표준발음법을 만들어 놓고도 정작 자신이 주관한 수능시험에서는 그 규정을 무시하고 틀린 발음으로 문제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발음의 장단 구분이 현실적으로 무너져버려 표준발음법의 관련 규정이 더는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면 교육부는 그 규정을 폐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 규정을 만든 교육부부터 마땅히 솔선수범해서 지켜야 한다.

국가가 주관하는 수능시험에는 조그마한 잘못도 있어서는 안 되며, 같은 잘못을 매년 되풀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수험생 일부가 저지르는 시험 부정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다.

김창진 초당대 교수·한국어 바르고 아름답게 말하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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