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변광옥]‘소나무 에이즈’ 퍼뜨리는 사람들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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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 피해가 확산 일로에 있어 국민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일본 대만 등에선 재선충 방제를 포기해 소나무가 전멸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소나무가 전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나무 재선충을 박멸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제법이 없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한반도 자연의 골격을 이루는 동시에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산맥이다. 한반도 전역에 걸쳐 소나무가 분포하고 있지만 백두대간을 따라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아름다워 금강소나무로 불린다. 예로부터 궁궐이나 사찰을 건립하는 데 많이 이용됐고, 최근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도 쓰인다. 백두대간의 준령을 굽이굽이 넘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는 소나무들의 자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소나무 재선충으로부터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4, 5일의 짧은 기간에 알에서 성충이 되는 소나무 재선충은 번식력이 좋아 암수 한 쌍이 20일 후에는 20만 마리로 늘어난다. 크기는 다 자란 암컷이 0.7∼1.0mm이고 수컷은 이보다 조금 작은 0.6∼0.8mm이다. 이들이 소나무 속에서 양분과 수분의 이동통로를 차단하기 때문에 결국 나무가 고사하게 되는 것이다.

재선충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애벌레의 몸속에 들어가 있다 성충이 된 솔수염하늘소가 먹이를 찾아 다른 나무로 옮겨갈 때 이동하는데 솔수염하늘소가 날아갈 수 있는 거리는 100m 내외이며 연간 이동거리도 5km 이내다.

이렇게만 전염된다면 재선충의 감염 경로를 예측할 수 있어 방제가 가능하다. 감염된 소나무 주변의 소나무 숲을 말끔히 잘라내야 하므로 경관 훼손 및 경제적 손실이 크지만 어쨌거나 전염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 시작된 재선충 피해가 바다 건너 제주도나 백두대간 너머 강원 강릉, 동해시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순전히 사람들의 부주의 탓이다. 감염된 소나무를 감염된 줄 모르고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옮기기 때문에 피해지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의 경우 모 사찰 일주문 건축에 쓰기 위해 육지에서 가져간 소나무가 재선충을 옮긴 것으로 역학조사 결과 확인됐다.

정부는 소나무 이동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전국 370여 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산림공무원을 비상 배치하여 소나무의 목재에서 조경 수목에 이르기까지 감염목이 외지로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문검색과 더불어 계도에 나서고 있다. 당국의 이러한 조치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자발적인 동참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민 각자가 소나무 지킴이가 돼 마을 뒷산의 소나무 숲에 재선충 피해 징후가 없는지, 우리 동네에 낯선 건축목재나 조경용 소나무가 반입되지는 않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잎이 아래쪽부터 붉게 마르며 마른 잎은 우산살처럼 아래로 처진다. 재선충과 상관없이 소나무가 마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엔 마른 잎이 아래로 처지지 않는다.

1960년대에 송충이가 창궐해 소나무 잎을 갉아먹을 때 초등학생들까지 송충이 잡기에 나섰다. 그뿐인가. 솔잎혹파리가 전국을 휩쓸 땐 소나무에 방제 약을 주사하기 위해 전국 산야를 누볐기에 지금 우리가 보는 소나무 숲이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온 소나무 숲이 우리 세대의 부주의로 사라진다면 후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재선충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모으자.

변광옥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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