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교수 “현정부는 아무것도 하는일 없는 건달정부”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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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한마디로 건달 정부다.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아무 하는 일이 없다.”

1970년대의 대표적 좌파 경제사학자였던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가 4일 정치 웹진 뉴라이트닷컴(www.new-right.com)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대해 한 말이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다.

―최근 활동 폭을 넓히게 된 계기는….

“북한의 집권세력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북한 주민들하고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인민의 문제는 곧 인권 문제다. 북한 문제의 해결 방안은 인권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한국 현대사의 하나의 과제로서 북한 인권 문제, 탈북자 문제, 이런 것에 대해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대북 유화정책의 문제는….

“김대중(金大中)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 정책의 기본 전제는 남쪽이 유화적으로 나오면 북한이 개혁 개방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북한에는 개혁 개방 노선을 배제한다는, 남한의 햇볕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한 수많은 문건이 있다. 한마디로 대북(對北) 포용정책은 대북용이 아니라 대남(對南)용인 셈이다.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의 노예화는 필연적이다.”

―정부는 남북 교류가 확대되면 북한도 개혁 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데….

“개혁 개방이라는 것이 결국 경제 문제다. 경제 교류가 성공적이라면 대북사업이 본궤도에 올라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즉, 대북사업에서 이익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10년간의 대북사업에서 제대로 영업을 했다는 기업이 단 한 개라도 있다면 제가 틀렸다고 인정하겠다. 망했다는 경험만 산더미 아닌가. 어떤 점에서 개혁 개방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충분한 대북 식량 지원으로 탈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는 정동영(鄭東 泳)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오히려 정 장관에게 물어보고 싶다. 식량 지원이 전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며, 북한 주민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김정일(金正日)의 호화로운 생활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말이다. 사상의 본질은 결국 인권이다. 주위의 이웃을 불행하게 하는 사상이라면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한국 내에서 상당히 반향을 얻고 있다.

“식민지를 경험했던 국가라면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 호소력을 갖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민족주의만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하지만 유럽연합(EU)과 같이 세계가 하나의 지역 단위로 묶여가는 판국에 자주국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

“지금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 정부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부각시켜서 자신들이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세력인 양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형국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문제다. 그런데 독도 문제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중심축에 놓는 것은 선진화를 위한 한일관계 구축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망각하게 만든다. 정부는 뭐든지 다 한다고 말하지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잖은가.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해서 정권을 유지하려는 음흉한 의도라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선진화에 있어서도 현 정부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보는지.

“한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구조이고 경제 발전을 하지 않으면 분배를 할 수 있는 펀드가 형성되지 않는다. 빈손을 갖고 분배를 말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의 모순이다. 지금 정부를 보라. 물론 해외유학파가 있기는 하지만, 현 정부의 주류는 과거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세력이고, 유학파라고 해 봐야 이류, 삼류들뿐이다. 언젠가 청와대에 있는 누군가가 정책 로드맵이라고 보여 주었는데 전부 메모 쪼가리뿐이더라. 정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정책 체계를 만드는 일이 가장 핵심이다. 안 하는 게 없이 일만 벌여 놓으니 체계가 잡힐 리가 있겠는가. 아이디어의 쓰레기통에 불과하다.”

―내년 예산안을 보면 복지 분야 예산은 2배 이상 늘었는데,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줄었다.

“이 정부는 지금이 불황인지 아닌지도 인식을 못하지 않는가. 얼마나 무능한지 알 만한 일이다. 이번 재선거에서 지고도 반성을 못하고 있잖은가. 원래 재생의 가능성이 있어야 반성도 되는 거다. 반성을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는 것이다.”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사고가 안 나도록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선생님의 정부 비판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의 고언도 ‘정파적 발언’으로 매도됐다.

“상관없다. 박정희 치하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인데 뭘…. 사실 그동안 제가 자제했던 것도 현 정부 인사들이 모두 제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점 나라를 망쳐가는 것 같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 정부 인사들의 가장 큰 약점은 ‘거짓’에 있다. 현 정부가, 현 정부의 지식인들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안병직 교수는

1970년대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꼽혔다. 모교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근거로 1970년대 말이 되면 한국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계속하자 저개발국도 발전할 수 있다는 ‘중진자본주의론’으로 입장을 바꿨다. 특히 1985∼87년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일본 중국 소련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주의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사회주의적 이론을 스스로 폐기했다. 2002∼2005년 일본 후쿠이(福井)현립대 대학원 교수를 거쳐 최근 서울대 명예교수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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