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진단서는 마약판매 허가증?…40代8차례 범행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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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말기 암 진단서가 무슨 마약 판매 라이선스(허가권)도 아니고….”

2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조영곤·曺永昆) 수사관들은 마약 거래 첩보를 입수했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인근 도로로 급히 달려가 마침내 마약 밀매범을 잡았다. 하지만 범인을 검거한 수사관들의 기쁨도 잠시. 이들의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두 달 전 경북 추풍령휴게소에서 같은 혐의로 붙잡았던 말기 암 환자 김모(45) 씨가 장소를 옮겨 또 히로뽕을 팔고 있었던 것.

당시 경북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호송된 김 씨는 담당 검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진단서를 꺼냈다. 간암 말기. 담당 검사는 ‘길어야 8개월’이라는 병원 측의 답변을 듣고 김 씨를 풀어 줬다.

말기 암 환자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기각하는 게 보통이다. 또 구속되더라도 확정 판결 이전에 숨질 가능성이 높아 불구속 기소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검찰은 김 씨를 쉽사리 ‘처벌’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동종 전과가 있는 김 씨는 이미 4월 1일 대구지검에 의해 구속 기소됐지만 다음 날 법원의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나 대구의 한 병원으로 거주지가 제한돼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김 씨는 이후에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마약을 팔았고 6개월 동안 검찰과 경찰에 7번이나 붙잡혔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풀려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마약을 복용한 흔적은 없었다.

김 씨는 검찰에서 “생활비와 치료비가 필요해 마약을 팔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구속집행 정지 이후 8번째로 김 씨를 적발한 검찰은 “더는 정상 참작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법원도 22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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