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정토회가 사과한 까닭은…

  • 입력 2005년 4월 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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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의 도롱뇽만 중요한가요. 우리 마을 앞의 가재와 도롱뇽도 살려내시오.”

3일 오후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모래실마을 회관. 40여 명의 주민이 불교 수행단체인 정토회가 마을 앞산과 하천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항의했다.

잠시 후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이 고개를 숙인 채 준비해 온 사과문을 읽었다.

법륜 스님은 “불법형질변경 등으로 고발돼 마을 주민과 국민에게 소란을 끼친 점을 사과드린다”며 “앞으로는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의 뜻을 존중하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토회는 최근 경부고속철 천성산 구간 공사를 반대하는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 과정에서 지율 스님을 적극 지원하는 등 ‘환경 보호와 친환경적 삶’을 강조해 온 불교계의 대표적인 수행단체이다.

법륜 스님이 이날 주민들 앞에 머리를 숙인 이유는 정토회가 2003년 9월부터 이 마을 앞 뇌정산(991m) 비탈에 법당과 대규모 수련시설 등을 짓는 공사를 하면서 불법으로 산림을 훼손하고 농지를 조성했기 때문.

정토회는 당초 문경시로부터 1만5000여m²의 개발 허가를 받았으나 공사 과정에서 2000여m²의 임야를 허가 없이 개발해 지난해 벌금 120만 원을 물었다. 그러나 7000여m²의 임야를 불법으로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문경시에 의해 추가로 고발돼 현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일부 주민은 “그동안 정토회가 주민들의 목소리에 아랑곳 않고 공사를 밀어붙인 과정을 볼 때 이번 사과의 ‘속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시어머니가 하도 걱정을 해 내려와 봤다는 경기 부천시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공사 현장을 둘러보니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욕심이 눈에 보인다”며 “힘없는 마을이라고 이렇게 마음대로 환경을 파괴해도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륜 스님은 “먼 곳을 살피느라 정작 가까운 이웃의 고통을 살펴보지 못했다”며 “이제부터라도 법규를 지키고 주민들의 뜻을 철저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생태계 보호와 친환경적 삶을 추구해 온 정토회가 정작 자신들의 불사(佛事)에서는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이번 일이 스스로를 더욱 가다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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