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입닫고, 교사는 입단속”… 학교폭력 피해신고접수 지지부진

  • 입력 2005년 3월 14일 18시 06분


교육인적자원부와 경찰청이 4일부터 학교폭력과 피해신고를 접수하고 있으나 일선 학교의 비협조로 제대로 신고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 외에 학교나 교육청을 통한 신고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일부 학교의 경우 ‘입단속’을 시키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신고 접수 이후 처음으로 14일 가해 학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고실적 저조=경찰은 학교폭력과 관련해 이날까지 총 36건의 신고를 접수해 이 중 가해자 9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가해학생이 자진 신고한 경우는 없었으며, 대부분 피해학생의 가족 등이 대신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날 현재 서울시교육청이나 서울시내 각 지역교육청의 신고전화 및 각급 학교를 통해 접수된 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피해학생들이 ‘학교에 신고해 봤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보복만 받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서울 S여중 3학년 김모(16) 양은 “담임선생님에게 불량학생에 대해 상담했더니 ‘그 아이 성질 건드리지 말고 조심하라’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송연숙(宋姸淑·41) 사무국장은 “그동안 학교가 학교폭력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증거”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일선 교육기관이 학교폭력에 더 관심을 갖고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입단속 나서기도=경기 B고 김모 교사는 “최근 ‘일진회’ 문제가 부각되자 교장이 교무회의에서 ‘우리 학교에는 학교폭력이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며 “이처럼 쉬쉬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실태조사가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D중 2학년 심모(15) 군은 “담임선생님이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밖에 신고하면 경찰에 잡혀가고 손쓸 수 없게 되니 꼭 학교에 신고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인근의 E중 3학년 김모(15) 양도 “선생님이 다른 곳에는 절대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해결할 테니 선생님에게 얘기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청은 이날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종합 치안대책’을 발표하고 미아찾기신고전화(182)와 성매매피해여성긴급지원전화(117) 등을 통해서도 학교폭력 신고를 24시간 접수하기로 했다.

▽학교폭력 처벌=강원지방경찰청은 이날 도내 모 고교 1학년 A(17) 군에 대해 갈취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A 군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동급생 B(16) 군을 협박해 10여 차례에 걸쳐 220여만 원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 군은 평소 몸이 약한 B 군에게 “가출비용을 대라”며 자신의 은행계좌에 돈을 입금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잠적한 A 군의 소재를 쫓고 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경찰 접수된 피해 사례▼

‘선생님에게 학교폭력 사실을 신고하면 왕따’ ‘일진들의 여자친구 흉을 보면 집단구타’….

14일까지 경찰에 접수된 학교폭력 피해 사례들을 보면 학생들이 왜 신고를 꺼리는지, 또 최근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여중생 A 양은 같은 학교 동급생 B 양으로부터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7차례에 걸쳐 폭행을 당하고 28만 원을 빼앗겼다.

견디다 못한 A 양은 최근 이 사실을 담임선생님에게 알렸으나, 꾸중을 들은 B 양이 친구들과 함께 A 양을 집단따돌림해 A 양은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경찰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같은 학교에 다니면 피해자의 신고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신고된 학생에 대해서는 교사가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진회 등 폭력서클이 소속 학교 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의 다른 학교와 연계하고 심지어 어린 학생에까지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례도 많이 접수됐다.

고교생 C 군은 학원에 같이 다니던 여고생에게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7명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 그 여고생이 다른 학교의 폭력서클에 속한 D 군의 여자친구였던 것.

여중생 E 양 등 4명은 다른 학교에 다니던 동급생 F 양 등 6명을 상대로 지난해 6월부터 올 3월까지 9개월 동안 무려 42회에 걸쳐 50여만 원을 뜯어내고 각종 폭행을 일삼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가해자 측의 자발적인 신고가 저조해 피해자 신고를 통해 가해자를 추적하고 있다”면서 “학교와 교사, 학부모 등의 협조 없이는 학교폭력 실태를 정확히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14일까지 신고된 36건의 학교폭력 가운데 폭력행사가 15건으로 가장 많고 금품 갈취 14건, 기타 7건 등이라고 밝혔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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