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영국의 맞춤형 인력양성 어떻게 하나

  • 입력 2005년 3월 14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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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운영하려고…
식당 운영하려고…
《“식당 손님 응대에선 3가지가 중요합니다. 맛있는 음식 못지않게 손님에게 환한 웃음(a winning smile)을 지으면서, 눈을 맞추고(eye contact), 편안한 분위기(relaxing)를 만드는 서비스의 생명입니다.” “포크 나이프는 손님 왼쪽에 소리 나지 않게 공손히 놓고, 물은 오른쪽에서 따라야 합니다.” 기자가 영국 남중부 플리머스의 플리머스 칼리지 교내 식당을 찾은 오전 11시 40분경 식당에서는 본격적인 점심시간을 앞두고 호텔서비스학과 학생 8명이 손님에게 서빙하는 강의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식탁용 냅킨이나 행커치프를 예쁘게 접고 포크 나이프 스푼도 크기대로 가지런히 배열했다. 언뜻 보아서는 강의라기보다 아들딸에게 식사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다정해 보였다.

애슐리 크로퍼드 교수는 “수업은 식탁 준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식당이 곧 강의실”이라며 “멀찌감치 떨어져서 서빙 과정을 채점하고 결과와 잘못된 점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식당을 지역사회에 개방한다. 주민들은 학생들이 만든 요리를 30% 가격으로 먹을 수 있고 학생들은 실습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설명이다.

방문단을 위해 서빙 실습에 나선 애비가이 브라운(16) 양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코끝에 땀이 맺히고 손끝이 약간 떨리기도 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보였다.

그는 “교수님이 너무 꼼꼼하게 관찰한다”며 “주말에는 실습과 돈벌이를 겸해 시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경험을 쌓아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산업혁명을 전파한 국가답게 영국은 내실 있는 직업교육 체제를 갖추고 산업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인력 양성으로 유명하다.

● 428개 직업학교 3500개 교육과정

미용사 되려고…
영국에는 428개의 직업학교들이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다. 만 16세부터 학문 중심의 대학과 실무형의 직업교육학교 중 어느 곳을 갈 것인지 진로를 선택한다. 직업교육과정이 3500여개나 되고 교육단계에 따라 자격증이나 산업체 일자리와 잘 연결돼 있다. 이론보다는 실무중심의 계속교육(Further Education)으로 중고교와 전문대가 합쳐진 과정도 있다. 직업교육을 받다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게 유연하게 짜여 있다.

영국의 직업자격증은 대입고사(A-level)에 준하거나 대학예비과정에 해당된다. 직업교육을 마치면 대부분 학사학위 과정 입학 자격이 있다.

● 대학-기업-지역사회 손 맞잡은 실무교육

직업교육과 산업이 동떨어지지 않고 배운 것을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치체스터 칼리지는 인근 롤스로이스 자동차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맞춤식 위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20명 등 지금까지 모두 69명을 교육시켰다. 또 대학에 직업훈련안내과(CATS)를 개설해 학생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플리머스 칼리지의 미용학과는 지역주민을 위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미용 기술은 물론 프런트에서의 계산법 등 실무교육도 시킨다. 학생 교육을 위해 예약을 많이 받지 않고 기업들은 염가로 미용제품을 제공한다.

오넬라이스 카나(29·여) 씨는 “미용실을 개업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1년 반 동안 공부하고 있다”며 “개업자금이 5000파운드(약 1000만 원)가량 들지만 미용업이 인기여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간 장벽이 없는 유럽 특성을 살려 유럽 대학들과 연계한 과정도 많다. 영국에서 일정 교육과정을 마치고 외국 직업학교와 연계된 호텔에서 6개월간 실습하기도 한다.

이런 탄탄한 직업교육을 통해 꽃꽂이 전문가 폴라 프라이크, 요리사인 크리스 태너와 노먼 푸 같은 유명한 직업인을 길러냈다는 설명이다.

기업들도 직업학교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벨기에 초콜릿회사 ‘칼리보’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 요리학과에 첨단 조리시설과 강의 녹화 및 중계 장비를 갖춘 주방시설을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15만 파운드(약 3억 원)를 기증했다. 또 대형 슈퍼마켓 체인회사인 ‘워트로즈’도 본머스 앤 풀 칼리지 호텔서비스·조리학과에 10만 파운드(약 2억 원)를 들여 캐터링 장비를 기증했다.

본머스 앤 풀 칼리지의 롤랜드 풋 학장은 “직업학교에서 양질의 인력이 배출되는 것이 결국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긴 안목을 갖고 대학과 기업, 지역사회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학은 토플 550점 정도 받아야

요리사 되려고…
직업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영어 성적은 토플 500∼550점, 국제영어능력평가시험(IELTS) 9점 만점에 6점 정도 받아야 한다. 영어연수와 전공을 절반씩 운영하는 곳도 많다.

주한영국문화원 고유미 공보관은 “한국에서 고교 졸업하면 일단 직업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며 “영어실력이 부족할 경우 직업학교의 영어프로그램에 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전공 프로그램의 내용을 탐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학비용은 한 해에 대략 1만 파운드(약 2000만 원) 안팎으로 미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유학생에게도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어 생활비 정도는 본인이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 호텔서비스·조리학과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 이도훈(25) 씨는 “경력을 쌓기 위해 시내 식당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 직업교육 지망생 많아 되레 고민

꽃집 열려고…
영국의 직업교육이 우수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 진학률이 30%를 밑돌고 16세에 직업교육의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 교육력이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직업교육이 우수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 진학률이 30%를 밑돌고 기초교육을 소홀히 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교육력이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2003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영국의 만 15세 학생의 문제해결능력은 40개국 중 25위일 정도로 낮아 교육개혁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3500개나 되는 직업교육 자격증을 14개 분야로 통폐합하고 영어 수학 등 기초과목의 교육과 평가시험을 개선하자는 내용의 ‘톰린슨 리포트’를 선거를 의식한 노동당의 루스 켈리 교육부장관이 거부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런던·치체스터·플리머스=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스테이시 플리머스칼리지 개발부장 인터뷰▼

“대학은 산업 인력을 길러내는 엔진과도 같습니다. 대학이 기업 활동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듣고 자문에 응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영국 플리머스 칼리지 고용계약팀의 피터 스테이시(사진) 비즈니스개발부장은 대학과 기업을 연결해 주는 ‘연락병’이나 다름없다.

스테이시 부장은 “플리머스 시와 인근 지역 3000여개 기업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수시로 채용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며 “실제로 600여개 기업에는 우리 대학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취업시키거나 이들 기업을 위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 대학이 대학과 기업의 연계를 강조하는 것은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대학이 개설할 수 있는 교육 내용의 비전을 제시하고 유연한 관리 및 문제 해결, 또 자유롭게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놓고 있다.

회사 간부들을 위한 1, 2일짜리 단기 과정부터 1년 이상의 장기 교육과정까지 수요자 요구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에 그치지 않고 졸업생을 채용해 본 고용주의 반응을 보고서로 만들어 교육 내용을 개선하는 데도 활용한다.

최근 이 지역에서 수요가 많은 건설 인력 양성 과정도 인기다. 교내의 작은 건물을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벽돌 쌓기부터 목공, 미장, 전기 배선까지 하며 완공된 건물을 실제로 사용한다.

스테이시 부장은 “중국 리비아 등 해외에도 눈을 돌려 필요한 곳이면 교수진을 파견해 교육할 정도로 글로벌 마인드도 갖추고 있다”며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뛰어 간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도 돈이 없으면 생존하기 힘든 현실인 만큼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늘 고민한다”며 “신문에 기업 관련 광고가 나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 본다”고 소개했다.

스테이시 부장은 “학생들이 최신 기술을 갖고 현장에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최대 목표”라며 “교육과정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 평가기관의 인증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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