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박재덕씨, 간경화 고통 23년 이웃사촌 부인에 간이식

  • 입력 2004년 12월 1일 18시 35분


코멘트
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무균실에서 정재길씨가 이웃사촌으로부터 간을 이식받고 회복 치료 중인 아내 유민이씨(오른쪽)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사진제공 강남성모병원
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무균실에서 정재길씨가 이웃사촌으로부터 간을 이식받고 회복 치료 중인 아내 유민이씨(오른쪽)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사진제공 강남성모병원
“내 생전 못 갚을 은혜를 친구에게 입었구나….”

“쓸데없는 소리 마라. 친구끼리 그런 거 없다.”

20여년 동안 친구로 지내온 ‘이웃사촌’의 부인이 간경화 말기로 고통을 겪자 대가도 없이 자신의 간을 기꺼이 이식해 목숨을 구해 준 미담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한 정재길씨(54)의 부인 유민이씨(51)는 간경화 말기로 목숨이 경각에 놓인 상태였다. 5년 전 간경화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유씨는 입원 당시 고열을 동반한 세균성 복막염까지 생겨 간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혈액형이 O형인 유씨와 달리 남편 정씨와 두 자녀는 모두 B형. 정씨 가족은 간 이식 대상자를 구하려 백방으로 뛰었지만 기증자를 찾지 못해 절망에 빠져 들었다.

이때 정씨 가족에게 ‘구세주’가 된 것이 바로 오랜 이웃사촌인 박재덕씨(54). 진작부터 유씨의 병세를 걱정해 오던 박씨는 14일 병원으로 찾아와 “친구를 위해 좋은 일 한 번 하고 싶다”며 간이식 의사를 밝혔다.

정씨는 “‘위험한 수술인데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다음날 박씨가 부인과 함께 찾아와 ‘가족 모두 동의했으니 아무 말 말라’고 했다. 장기기증신청서도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박씨가 몰래 제출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와 박씨 가족은 20대 후반 신혼 초기부터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동네에 산 이웃사촌. 동갑내기로 막역한 친구가 되면서 부인들은 물론 이후 자녀들까지 23년간 한가족처럼 지내 왔다.

정씨의 아들 성호씨(22·대학생)는 “평소에도 친삼촌처럼 잘해 주셨던 아저씨가 어머니의 생명까지 살려주셨다”면서 “아버지가 ‘내 대에 이 은혜를 다 못 갚으면 네가 종수형(박씨의 아들)에게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26일 수술을 받은 유씨와 박씨는 현재 성공적으로 간을 이식하고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인 상태. 박씨는 “나보다 장한 일 한 사람 많으니 일없다”며 끝내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