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우리동네가 최고/송현1·2동

  • 입력 2004년 11월 1일 20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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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몰라보게 바뀌었네. 불과 12년전 서울로 이사할 때 까지만 해도 손수레조차 다니기 힘든 좁은 골목길에 게딱지같은 판잣집만 잔뜩 몰려 있었는데….”

1992년 인천을 떠난 지 12년 만에 최근 자신의 고향인 동구 송현1·2동을 찾은 김영재 할아버지(72)는 상전벽해(桑田碧海)한 송현동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당시 울퉁불퉁한 산비탈에 생활형편이 어려운 빈민층 가정이 몰려 살아 ‘수도국산(水道局山) 달동네’로 불렸던 동네가 고층 아파트 타운으로 변신해 있었기 때문.

수도국산은 1908년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인천 최초의 상수도시설인 송현배수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 이후 일제시대를 거쳐 6·25전쟁 때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전형적인 달동네가 됐다. 이 동네를 배경으로 도시 빈민이 겪는 아픔과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 연극 ‘아버지의 침묵’이 1990년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산비탈 5만여평에 있던 3000여채의 판잣집과 초가집 등이 너무 낡아 붕괴위험이 제기되자 구는 1999년부터 옛 가옥들을 모두 헐고 아파트를 새로 짓는 송현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4월 입주가 시작된 솔빛주공아파트에 2700가구, 낡은 주택을 개량한 단독주택에 2000가구 등 모두 1만3000명이 입주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기존 송현동 주민들이다.

과거에는 놀이터가 없어 소규모 교회가 어린이들의 쉼터 역할을 했지만 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송현근린공원(2만2000평)도 들어섰다.

이처럼 주거환경은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던 동네이기 때문인지 옛 것을 보존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남다르다. 수십년간 살아온 가옥이 철거되는 장면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구에 ‘동네의 역사를 보존할 방법을 찾아봐 달라’고 건의했다.

구는 이를 받아들여 2001년 11월 송현공원 내에 지상 2층(연면적 240평) 규모의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다.

내년에 개관할 이 박물관에는 판잣집, 구멍가게, 솜틀집 등을 축소 재현한 상설전시실과 달동네의 정감어린 모습을 담은 미술사진전 등이 열리는 특별전시실 등이 마련된다.

주민들은 1960, 70년대에 사용하던 수도국산 지명이 적힌 문패와 다듬잇돌, 인두 등 480여점의 옛 생활용품을 전시품으로 기증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매일 열리는 ‘장구·소리교실’에서는 잊혀져가는 전통가락을 주부들에게 무료로 가르친다. 이 동네 토박이인 이시훈 할아버지(72)가 천자문과 한자성어를 가르치는 한자서예교실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염준웅 주민자치위원장(55)은 “겉보기에는 삭막한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네”라고 말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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