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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2일 2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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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북 구미시 선산읍 봉곡2리의 자택에 ‘부부문패’를 단 박옥자(朴玉子·51·여)씨는 요즘 자신의 삶이 다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1975년 결혼한 이후 30년 가까이 ○○엄마로만 불려오다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박씨는 “그동안 내 이름을 잊고 살아왔는데 부부문패를 단 이후 이웃들도 ‘이름이 좋네!’라며 기꺼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며 “다른 부녀자들이 부러워하고 우체부도 ‘우편물을 쉽게 배달하게 됐다’며 좋아한다”고 밝혔다.
구미시여성단체협의회와 구미시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없고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2002년부터 추진해 온 ‘부부문패 달기’ 운동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주민 수는 2002년 50가구에서 2003년 166가구, 올 들어 현재까지 226가구 등으로 점차 늘고 있다.
왼쪽에는 남편, 오른쪽엔 부인 이름을 함께 새긴 부부문패를 부착할 경우 구미시가 문패 비용 2만5000원 중 2만원을 지원해준다.
이 운동은 사라져가는 문패문화를 살리는 한편 농촌지역에 오랫동안 뿌리 깊게 존재해 온 가부장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양성평등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고아읍 문성2리 속칭 ‘가자골’의 경우 44가구 가운데 혼자만 사는 일부 집을 제외하고 모두 부부문패를 달아 이 운동의 시범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곳이 시범마을이 된 데에는 문성2리 이장인 김정숙(金貞叔·46·여)씨가 부녀회 모임 등에 나가 부부문패를 달 것을 적극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김씨는 “부부문패를 단 가정은 남편이 ‘집의 절반은 마누라 몫’이라는 등의 얘기를 하며 부인에게 좀더 잘 대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이 운동이 확산돼 부부가 서로 동등한 인격체임을 인식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기여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업무를 맡고 있는 구미시 사회복지과 신형수(申瑩壽·7급)씨는 “부부문패 달기에 대한 반응이 좋은 데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여서 자치단체 차원에서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성진기자 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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