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업무 어떻게]“일좀해” vs “눈치껏”

  • 입력 2004년 8월 16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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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피터 윌리엄슨 교수는 13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 기업들이 ‘공장’ 이외의 영역, 즉 행정 업무 등에서 생산성 누수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직(블루칼라)보다 사무직(화이트칼라)의 생산성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에서는 화이트칼라에게 최대한 농땡이를 치라고 제안하는 처세술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다. 화이트칼라에 대한 생산성 향상 압박이 그만큼 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시아 기업의 낮은 생산성은 화이트칼라 탓이다=윌리엄슨 교수는 “아시아 기업들이 근본적인 생산성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구 기업에 비해 노동비용이 저렴하고 ‘공장에서의’ 생산성도 높은데 사무직 탓에 전반적인 생산성이 낮다는 것.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 자본금 기준으로 상위 30개 기업의 1인당 연간 생산성은 각각 33만8000달러, 27만5000달러, 25만달러로 아시아가 가장 낮았다.

그는 “1990년대에는 ‘외형 확장’이 아시아 기업들의 제1 목표였기 때문에 새로운 공장이 늘면서 행정 등 각종 지원업무조직도 비대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아시아 기업들이 직원들의 업무를 평가할 때 ‘성실성과 노력’보다는 구체적인 ‘투입과 산출’ 결과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원의 생산성을 엄밀히 평가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윌리엄슨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전자업체 샤프는 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도 예산을 편성했다. 각 공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관리하기 위한 것. 이를 통해 샤프는 소비자들의 주문 만족도를 기존의 77%에서 88%로 높이고 재고는 3분의 2로 낮출 수 있었다.

중국 리앤펑은 국가별로 돼있던 조직을 고객 군별로 재분류하고 수익성이 높은 고객이나 수출품목을 찾아내는 직원들에 대해 보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평가기준을 재편했다.

▽화이트칼라여, 가능한 한 농땡이를 쳐라=‘게으름아, 안녕?(Bonjour paresse)’이라는 책은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에게 ‘티 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일을 적게 하라’고 제안했다.

매순간 쥐어짜도록 만드는 영미식 직장윤리에 대한 반발로 보는 시각도 있고, 프랑스 기업의 비효율성에 대한 풍자로 보는 해석도 있다.

저자 코린 마이에르는 공기업인 프랑스전력(EDF)의 경제분석가. 그가 보는 직장은 이렇다.

“승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야망과 열정이 아니라 꾹 참는 인내다. 회사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하지만 직원을 다 쓴 휴지조각처럼 버린다. 직장은 일이 흥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매달 월급을 주니까 다니는 것이다.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현대판 노예다.”

마이에르는 몇 가지 행동 요령도 제시했다.

“회사매출이나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적인 평가가 어려운 ‘애매모호한’ 부서에 지원하라. 책임이 많이 따르는 일은 절대 맡지 마라. 파일 뭉치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바쁜 척하라.”

이 책은 올해 4월 말 출간됐을 때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EDF가 마이에르를 징계위원회에 소환하기로 하면서 프랑스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징계위원회는 이달 17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마이에르가 ‘휴가 기간’이라며 출석을 거부해 다음달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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