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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4일 0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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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개통 이후 20건이나 발생한 고속열차 지연 운행 사고 가운데 6건이 전자파로 인해 보조전원장치의 반도체가 파열돼 전원 스위치가 꺼지면서 일어났던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나머지 사고는 대부분 문이나 바퀴에 이물질이 끼거나 전력공급선에서 까치집이 발견돼 안전운행을 위해 취해진 사전 조치였다.
▽전자파 사고=철도청은 이날 “조명기구, 에어컨, 통신기기 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보조전원장치의 반도체가 전자파로 인해 파열되고 있어 전자파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조전원장치의 반도체는 100만분의 1 암페어(A) 정도의 약한 전류로 작동하는데 주위에 전자파가 발생하면 순간적으로 과도한 전류가 흘러 마치 퓨즈가 끊어지듯이 반도체가 타버린다는 것. 철도청은 시험운행 과정에서도 이 같은 오류를 발견했으나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채 1일부터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이런 고장이 나면 당장 수리하기 힘들어 승객이 대기 열차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고속열차는 최대 1시간까지 지연 운행될 수밖에 없어 승객들의 불만이 컸다.
▽전자파 발생 원인=철도청은 전자파가 동력차 기계실 내부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밀한 전자장치가 밀집해 있는 고속열차 내부에서 발생한 전자파들이 내부에서 걸러지지 않고 보조전원장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철도청은 고속열차가 철로 주위 변전시설을 지날 때 순간적으로 전자파가 침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철도청은 한때 승객들이 이용하는 휴대전화나 노트북PC에서 발생한 전자파가 고장의 원인일 가능성도 검토했으나 객실 내부에서 발생한 전자파는 객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로선 전자파 발생 부위가 명확하지 않아 전자파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 실정이다.
▽철도청 조치=철도청 강길현(姜吉炫) 고속철도계획과장은 “보조전원장치의 전력선에 전자파 유입을 차단하는 ‘비드코어(bead core)’등을 새로 설치해 주변 전자파로부터 기기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청은 고속열차 제작사가 전자파 방출 국제규격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지난해 정보통신부는 고속열차 시험운행 과정에서 열차 외부에서 유입된 전자파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산하 국제무선장해특별위원회(CISPR)의 국제표준규격을 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또 보조전원장치 등 전자기기도 규격에 맞게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조광윤(趙光胤) 전자파환경연구팀 책임연구원은 “각 제품이 규격에 맞더라도 실제 열차 운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꼼꼼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84년 일본의 한 지하철역에서는 20m 떨어진 전자오락실에서 나온 전자파로 인해 신호가 교란돼 열차끼리 충돌한 사례가 있다. 전자파를 완전히 차단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고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승용차 급발진 사고도 전자파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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