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손녀 살해 할머니 집유“시련 다 떠안으려 했던 점 고려”

  • 입력 2004년 1월 20일 16시 34분


심한 장애를 가진 손녀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며 극약을 먹여 살해한 할머니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이학수 부장판사)는 20일 손녀를 독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씨(78·여·경남 고성군 마암면)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자식 여럿을 먼저 잃는 등 그동안 개인적인 시련이 너무 많았고, 대소변과 식사까지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손녀와 아들 부부가 겪는 어려움을 보다 못해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안으려 했던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경찰에 검거된 이후 심하게 자책하며 반성하는 데다 고령인 점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5일 오후 7시반경 고성군 거류면의 막내아들 최모씨(38·중장비 기사) 집에서 최씨의 딸(당시 10·특수학교 4학년)에게 극약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3일 구속 기소됐다.

이씨는 경찰에서 “7명의 아들딸 가운데 재작년까지 5남매를 사고와 질환 등으로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10년 전부터 극약을 보관해 왔다”며 “손녀에게 극약을 먹이고 음독자살하려 했으나 극약이 쏟아지는 바람에 죽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정신지체 1급 장애아인 손녀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간질까지 앓아 아들 부부가 치료비로 4000여만원의 빚을 지는 등 어려움을 겪자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부산 자비사 주지인 삼중(三中) 스님이 이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여러 차례 면회했으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통영=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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