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태반 주사’ 이상 열풍…‘만병통치약’으로 통해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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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강남구 A통증클리닉.

이른바 ‘태반(胎盤)주사’를 맞으려는 환자들이 이날 하루에만 50명이 몰려들었다. 중장년층이 많지만 10, 20대 학생과 연예인도 눈에 띄었다. 운동선수와 술집 여종업원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병원측의 설명.

근처의 B피부과, C클리닉에도 태반주사를 맞기 위해 하루 30명 이상이 찾는다. 주사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회당 5만∼15만원의 돈을 내야 한다. 일단 투여를 시작하면 의사들은 주 1, 2회씩 최하 10회부터 연간 단위로까지 꾸준히 맞도록 권유하고 있어 한 번 처방에 기본적으로 100만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태반주사’ 열풍=최근 태반주사가 서울 강남의 통증클리닉, 피부과, 내과를 다니는 부유층 환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간기능 개선 약’ 정도로 인식됐던 태반주사가 최근 들어 통증 치료, 피부 미용, 불임 치료, 노화 방지, 갱년기 영양제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기 때문.

태반주사에 쓰이는 주사액은 사람의 태반으로 만든 일본 제품으로 ‘라에넥’과 ‘메르스몬’ 2종류가 있다. 라에넥은 1993년 4월 국내에 간질환 치료제로, 메르스몬은 올해 9월 갱년기장애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허가를 받아 수입이 시작됐다.

의학계에서는 일종의 영양제 개념으로 허가를 받은 메르스몬이 수입되면서 국내 태반주사 시장의 영역이 더 넓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3, 4년 전부터 태반주사 치료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메르스몬의 수입판매원 중 한 곳인 ‘그린 트레이딩’의 김주희 대표(36)는 “9월에 2500앰풀을 일반 병원에 판매했으나 11월에는 8000앰풀 정도가 팔렸다”고 말했다.

라에넥의 일본 생산처인 일본생물제제(日本生物製劑)의 가쿠 다이이치(郭太一) 상무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년 전 1개월에 1만5000앰풀을 한국에 수출했으나 최근에는 월 4만5000앰풀로 판매가 크게 늘었다”며 “한국에서 간기능 개선과 더불어 피부 미용, 체력 강화 등을 목표로 사용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없나=러시아 중국 등의 의학자들도 태반을 연구하지만 주사액으로 가공해 시판하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은 대부분 보험처리가 되는 데다 주사 1회당 환자 부담도 약 1500∼3000엔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이를 ‘대체의학’으로 보지만 몸의 일부분을 약제로 가공하는 데 대한 윤리적 거부감 때문에 연구가 별로 없다.

성균관대 진단검사의학과 김대원(金大元) 교수는 “한국에서 태반주사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라며 “질병을 지닌 산모의 태반에 의한 감염 위험 등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좀 더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태반학회 심청웅(沈晴雄) 회장은 “태반 연구나 임상 경험이 많지 않은 일부 국내 개업의들이 개인의 체질이나 병세를 고려치 않고 태반주사제를 남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값이 일본에 비해 비싸고 약효가 과대 포장돼 있다는 점, 주사에 대한 내성(耐性)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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