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재성/오락가락 ‘판교 학원단지’

  • 입력 2003년 9월 28일 18시 48분


코멘트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에 1만평 규모의 학원단지를 조성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부는 27일 판교신도시의 학원단지 조성계획을 백지화했다. 대신 자립고 유치와 ‘교육시설 구역(에듀파크)’ 설치 계획은 당초 안대로 추진키로 했다.

공교육 정상화와 정부 주도의 학원단지 조성은 여러 모로 양립(兩立)하기 어려운 정책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학원단지 추진에서 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부가 서울 강남지역 집값 안정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판교신도시 개발을 확정한 2001년까지 학원단지는 기본구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초 계획에는 학교와 학교 지원시설을 유치한다는 차원에서 ‘교육시설 구역’이 설정됐다. 학원은 학교 지원시설로 에듀파크에 일부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오름세가 꺾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9·4 주택시장 안정대책’에서 학원단지를 별도로 만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강남지역의 주거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우수한 교육여건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학원단지의 규모는 상업지역과 에듀파크를 분리하기 위해 일부를 학원용지로 사용하기를 권장하는 수준이어서 2000평 정도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건설교통부가 이달 8일 공개한 판교신도시 개발계획에서는 학원단지의 규모가 1만평으로 대폭 늘어났다. 학원 500개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는 설명이 붙었다. 또 국내외 유명학원을 다수 유치하겠다는 의욕(?)까지 보였다.

이에 대해 판교신도시 개발사업에 계획 초기부터 참여했던 한 관계자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예상되는 부작용이나 여론의 반발에 대한 철저한 사전검토나 검증작업 없이 학원단지 규모가 결정됐음을 뒷받침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자세도 문제다. ‘9·4 대책’은 재정경제부 차관 주재로 열린 관계차관회의에서 발표된 것으로 발표자료 겉장에도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또 보도자료에는 “앞으로 신도시 선정·조성 과정에서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교육청 포함), 개발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교육 여건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한다”는 내용과 함께 “신규 택지지구 개발시 학원단지를 별도로 확보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전협의가 없었다. 학원단지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변했다.

정부가 신도시개발과 교육이라는 국민적 관심사를 추진하면서 부처간 충분한 검토나 사전조율 없이 오락가락함으로써 정책의 신뢰성만 땅에 떨어뜨린 게 아닌가 걱정된다.

황재성 경제부 jsonh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