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효과 논란 ‘천지산’ 임상시험한다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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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주씨
1996년 ‘기적의 항암제’ 논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가 법원에 의해 가짜 항암제 판정을 받았던 ‘천지산(天地散)’이 정부의 허가에 따라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육산화비소 성분의 항암제 ‘테트라스’(천지산의 새 이름)가 동물실험, 독성실험 등에서 효능과 안전성이 인정돼 임상시험을 허가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강윤구(姜允求) 교수팀이 25일부터 6개월 동안 다른 치료법이 없는 17∼70세의 말기 고형암(固形癌·장기에서 생기는 암)환자 18∼36명을 대상으로 이 약의 효과, 적절한 처방용량, 부작용 등을 검증하는 1단계 임상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이 약은 1, 2차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1년6개월∼2년 뒤 상품화가 가능하다.

국내에서 SK케미칼의 선플라주, 종근당의 CKD 602 등 기존 약물의 분자구조를 약간 변형한 ‘응용 항암제’가 개발된 적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항암치료제가 개발돼 임상시험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약을 개발한 배일주(裵一周·44)씨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자력의학원, 충북대 동물의학연구소, 정부 인가 연구소인 바이오톡스텍 등에서 실시한 동물실험 및 독성실험 결과를 식약청에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약은 △암세포의 사멸 촉진 △암세포 혈관생성 억제 △방사선 치료 효과 증대 등 3가지 효과가 있다는 것.

천지산의 원료인 육산화비소는 비소의 일종. 비소는 수천년 전부터 암, 매독 등 각종 병의 치료제로 여겨져 왔지만 신경 독성 때문에 일반에게 사용되지 못하다가 96년 중국 연구팀이 천지산과는 구조가 다른 삼산화비소가 전골수성 백혈병(APL)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천지산은 96년 중졸 학력인 배씨가 50가지 생약 성분을 원료로 개발한 것으로 이를 암환자들에게 처방하다 구속되자 고위 공무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약에 효험이 있으니 배씨를 석방해 달라”며 검찰에 탄원서를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지법은 “천지산은 절박한 환자의 심리를 이용한 가짜약”이라며 배씨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배씨는 이 약을 과학의 영역에 진입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최근 원자력의학원 이창훈(李昌勳) 박사, 세계 최고의 암전문병원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의 웨이 장 박사 등과 공동으로 천지산이 암세포의 혈관 생성을 억제하고 암 세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쥐 실험결과를 국제 학술지 ‘국제 종양 저널’에 발표했다. 또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에서 약의 용도, 제조공정, 효능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

이 약을 심의한 가톨릭대 의대 김동욱(金東煜) 교수는 “현 단계에서 혈액암에는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암에서의 약효와 뇌 독성 정도는 임상시험이 끝나야 알 수 있다”며 환자들의 성급한 기대를 경계했다.

배씨는 환자가 몰려올 것을 우려하며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그는 “이 약은 법적으로 임상시험 대상자만 복용할 수 있다”며 약효가 공식 입증되기 전까지 처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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