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말없는 姜교육감

  • 입력 2003년 7월 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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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 지지 대가로 일부 지역 인사권을 위임하겠다는 각서를 써 준 것으로 알려진 강복환(姜福煥) 충남도 교육감의 행보가 눈총을 받고 있다.

강 교육감이 2000년 7월 교육감 선거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이병학 충남도 교육위원에게 결선투표에서 지지해 주면 일부 지역 인사권을 위임해 주겠다고 각서를 써 준 사실이 5일 공개된 데 이어 8일에는 이 각서에 다른 ‘밀약’이 추가로 들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즉 해당 지역의 교육재정에 대해서도 협의하고 단임으로 임기를 끝낸 뒤 차기 선거에서 지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강 교육감은 7, 8일 초등학교 체육관 개관 행사 등에 일일이 참석하면서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각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9일에는 예정된 행사 일정이 없는데도 종일 자리를 비웠다.

더구나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그가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밝힌 점이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교육계와 충남 도민들은 그가 ‘입장 표명’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현재 보도되고 있는 사항이 사실인지에 대한 진위를 밝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위 확인은 수사 여부와 관계없이 본인이 해야 할 사안이다.

그는 또 “교육계에 이처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무척 유감”이라며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한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강 교육감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9일 “교육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만큼 강 교육감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며 비난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번 각서 파문으로 충남 교육계는 깊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단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교사들은 “제자들한테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 빨리 방학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김모 전 충북교육감은 인사 청탁 등의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자 “확정 판결이 나기 전에는 그만둘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그는 지역 교육계의 갈등을 우려한 법원의 권고로 형이 확정되기 전에 그만뒀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강 교육감은 김 전 충북교육감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천안에서>

지명훈 사회1부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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