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웃을 '희한한 수사'…용의자-애완견 대질심문

  • 입력 2003년 5월 2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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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강아지와 살인용의자를 ‘대질심문’하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됐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 살인방화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최근 피살자의 애완견 ‘시추’(개의 종류)를 이용해 범인을 가리는 작업을 벌였다. 지난달 6일 삼전동 박모씨(46·여)의 집에서 박씨의 딸과 아들, 딸의 남자 친구 등 20대 3명이 흉기로 난자당하고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된 이 사건은 범행 현장에 지문 하나 남아 있지 않았고 목격자도 전무한 실정이었다.

경찰은 피살된 딸이 기르다 사건 직후 사라진 애완견이 범행 현장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소문 끝에 집을 나간 이 강아지를 이달 초 이웃주민 집에서 찾아냈다.

경찰은 ‘개 언어 번역기’까지 설치한 뒤 시추에게 수사선상에 있던 인물들과 마주앉게 하고 이상 징후를 살폈다. ‘개 언어 번역기’는 96년 일본에서 특허를 받은 상품으로 짖는 모습에 따라 ‘목마르다’ ‘두렵다’ ‘배고프다’ 등의 의사표시를 어느 정도 분별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시추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용의자에게는 오히려 꼬리를 흔들어 대면서 친근감을 나타내고 경찰에는 마구 짖어대기도 한 것. 아무 소득이 없자 일부에서는 ‘과학수사’를 강조하는 경찰이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수사기법을 과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개에겐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개의 반응을 보면 무언가 수사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 대질을 벌였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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