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찍기과외 열풍…대입수시 어학특기생制 변질

  • 입력 2002년 10월 23일 18시 27분


“청취 파트에서 답을 모를 때는?” (강사)

“4개의 보기 중에 현재진행형을 찍으면 되지요.” (학생들)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A영어 전문입시학원. ‘영어특기자 수시 입시대비반’ 학생 20여명이 ‘영어’가 아닌 ‘시험 잘 치기’를 배우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내년 5월부터 시작되는 2004학년도 대학 수시 입시를 대비하는 고교 2학년생들.

이들의 ‘영어교육’은 철저히 시험성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들은 앞으로 6개월간 매일 4시간씩 총 120여회 분의 문제를 풀 예정. 학원에서 만든 100여개의 청취 패턴과 150여개의 문법문제 패턴을 ‘모조리’ 암기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대학 수시 입시에 ‘영어 특기자’ 전형제도가 도입되면서 서울 강남일대에 ‘족집게 과외’가 성업 중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해 제도 본래의 취지가 변색되고 있다.

▽확산되는 족집게 강의〓서울 강남의 B학원은 아예 암기할 내용을 담은 ‘비법 노트’를 나눠준다. 내용은 대부분 ‘답 고르기 요령’. 예를 들어 “가정법 과거완료 문장이 나오는 제시문은 무조건 정답”이라는 식이다.

토플종합반의 경우 영작에 대비, 출제기관인 미국 ETS가 공개한 150여 문항의 모범답안을 모두 외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C어학원은 수험생들에게 ‘토플 후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반복 훈련시키고 있다. 토플은 문제은행식 평가이기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기출 문제와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기억을 토대로 문제를 뽑아 역시 암기시키고 있다.

영어특기자전형을 준비 중인 이모군(17·서울 S고 2년)은 “정상적인 영어공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암기한 만큼 성적이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험 특기생’ 양산〓‘영어특기자 전문학원’을 표방한 보습학원은 서울 강남에만 7, 8곳에 이른다. 일부 학원은 ‘토익 880〓A대 지방 캠퍼스 경영학과’ ‘CBT토플 285〓B대 의예과’ 등 대학 ‘배치표’까지 만들어 진학 상담도 벌이고 있다. 면접에 대비한 자기소개를 ‘모범답안’으로 만들어 주는 학원도 있다.

수시 입시를 통한 외국어 특기생 선발은 2000학년도에 처음 시행됐으며 해마다 선발 인원이 늘고 있다. 올해에는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전국 71개 대학에서 2800명을 어학우수자로 수시 모집했다. 이 중 60%인 1700여명이 ‘영어특기생’.

대학들도‘영어 특기자’가 아닌 ‘시험 전문가’들이 몰리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해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성균관대 영문과 김동욱(金東煜) 교수는 “토플 등이 ‘입시과목’이 되면서 다양한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며 “부작용이 있는 것은 알지만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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