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걸씨 신촌 친척집서 이틀밤 머물러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37분


14일 귀국 직후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였던 김홍걸(金弘傑)씨는 이날 밤 어머니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홍걸씨는 아버지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게 잇따라 2,3차례 전화를 걸었다. 1분 가량의 짧은 통화에서 그는 울먹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부라도 묻겠다”며 형들과도 통화하려 했으나 변호인인 조석현(曺碩鉉) 변호사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말렸다.

그는 귀국 당시 ‘007영화’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작전’으로 취재진을 따돌리고 서울 신촌의 친척집에 머물렀다. 조 변호사는 “홍걸씨는 허탈감과 피로감, 긴장 등이 겹쳐 몸살 기운이 있었다”며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쉽게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전했다. 마음을 가다듬지 못해 법률상담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홍걸씨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솔로몬왕의 격언을 담은 성경 구약의 잠언편을 펼쳤다. 2시간 가량 성경을 되풀이해 읽었다. ‘어리석은 자는 지혜와 명철함을 따르지 않는다’는 내용의 잠언서 1장7절 등을 종이에 옮겨 적기도 했다고 한다.

15일 점심 때 홍걸씨가 알고 지내던 목사가 찾아와 30분 가량 함께 기도했다. 조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 외에는 외부인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안정을 되찾은 홍걸씨는 조 변호사와 면담한 뒤 “담담히 검찰 수사에 응해 사실대로 말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구속도 각오하라는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최규선(崔圭善)씨의 주장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는 출두를 앞두고 16일 오전 6시경 일어나 기도를 한 뒤 우유와 식빵, 소시지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출두시간이 다가오자 다소 불안해하며 법률상담 시간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홍걸씨와 조 변호사는 검찰과의 약속대로 오전 10시 정각 검찰에 도착하기 위해 오전 8시40분쯤 친척집을 출발했다. 시간이 남자 두 사람은 승용차로 검찰청사 주변을 두 바퀴 돈 뒤 청사에 들어섰다. 베일에 싸여 있던 ‘황태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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