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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5월 10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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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회갑을 맞는 부인 함은옥(咸銀玉·60)씨와 함께 국토 도보 여행에 나선 이원상(李元相·64)씨는 부부끼리 오붓하게 걷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씨 부부는 등산 경력 40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두 번이나 하고 알프스 몽블랑까지 오른 등산 마니아.
오래 전부터 국토 도보 여행을 꿈꿔왔던 이씨 부부는 지난 달 18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해 광주, 전북 순창, 경북 문경을 거쳐 12일 고향인 강원 춘천에 도착한다.
매일 오전 6시반부터 걷기 시작해 23∼25㎞를 걷는다. 여행 나흘째 되던 날 이씨는 발이 심하게 부어 더 이상 걷는 게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부인 함씨가 생선 가게로 달려가 얼음을 얻어다 밤새 찜질해주는 바람에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참을 먹던 농부들은 지나가던 두 여행객을 불러 쑥떡을 손에 쥐어줬고 경로잔치가 벌어지는 마을에서는 배고픈 이방인들에게 한 상 가득 푸짐한 음식을 내왔다.
한번은 전남 나주에서 길을 가르쳐줬던 철도 승무원을 우연히 광주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는 부모님 생각이 난다며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세 딸을 비롯한 산악회 동료들은 격려 전화를 하거나 직접 여행지를 찾아와 격려하기도 했다.
“지나온 자국마다 정이 고였네∼. 도로가 자동차 소리마다∼.”
두 사람은 함씨가 개사한 ‘나그네 설움’을 함께 부르며 걷기도 한다. 딸 셋을 키우던 이야기, 어렸을 적 피란살이 이야기 등 그 동안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씨 부부는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여행에 몸은 다소 지쳤지만 갖가지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었다며 마음만은 풍성하다고 입을 모았다.
“곳곳에 정이 흐르는 국토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니 참 좋은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어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우리 땅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